[한마당-손수호] 수달의 母情
입력 2012-05-07 18:45
‘물속의 신사’ 수달(水獺)은 오염된 물에 살지 못한다. 하천에 수달이 살고 있다면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세계자연보호연맹이 멸종위기동물로 지정했고, 우리도 천연기념물로 보호한다. 한때 수달이 나타나면 TV 카메라가 달려갈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이런 귀한 수달이 예전엔 제법 흔했나 보다. 옛 문헌에 수달의 습성을 빗댄 이야기가 많다. 김종직 문집에 나오는 글은 ‘詩書舊業戈?黍(시서구업과용서) 翰墨新功獺祭魚(한묵신공달제어)’다. “시서의 옛 업적은 창으로 기장을 찧는 일이요, 문장의 새 공적은 수달이 잡은 물고기를 늘어놓은 듯 하네”로 풀이된다.
여기서 ‘달제어’의 의미는 두 가지다. 먼저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제사 지내듯 바위에 진설한다는 뜻이다. 또 당나라 시인 이상은이 글을 지을 때 여러 책을 펼쳐 놓는 모습이 수달과 닮았다고 해서 달제어(獺祭魚)라는 호(號)를 지어 준 사실을 거론한다. 실제로 이상은이 참고도서를 깔아놓은 꼴이 물고기 비늘 모습과 비슷했다고 한다.
김종직의 글에서 창으로 기장을 찧는다는 것은 아주 힘들거나 부질없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달제어를 등장시킨 것은 시작(詩作)할 때 남의 글을 부질없이 늘어놓는 행태, 즉 문장에 옛 것을 지나치게 많이 인용하는 병폐를 지적한 것이다.
수달은 지독한 모정의 상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삼국유사 ‘신주(神呪)’ 편에 용을 길들였다는 승려 혜통이 등장한다. 제목이 ‘혜통항룡(惠通降龍)’이다. 그가 속인으로 있을 때 서라벌 남산의 서쪽 기슭 은천동의 남간사(南澗寺) 동리에 살았다. 지금 이 절은 사라지고 없지만 경주 탑동 일원에 남간사 당간지주가 남아 기록을 뒷받침한다.
어느 날, 혜통이 동네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죽인 후 뼈를 뒷동산에 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수달의 뼈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길에 핏자국이 있어 따라가 보니 예전에 살던 구멍으로 돌아가 어린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있더라!
일연은 이 때 혜통의 심경을 ‘驚異久之 感歎躊躇(경이구지 감탄주저)’로 표현한 뒤 출가의 계기가 됐다고 전한다. 자식을 두고 온 어미의 한이 얼마나 컸으면 생명이 끊어진 뼈마디 상태로 핏방울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 새끼를 품었을까. 해마다 어버이날을 맞지만 수달의 사랑만큼 진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