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안철수 현상’과 ‘대선주자 안철수’는 별개다
입력 2012-05-07 18:35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에게 패배를 안겨준 ‘김용민 막말 파문’의 교훈 중 하나는 ‘나꼼수 현상’과 ‘국회의원 김용민’은 별개라는 점이다. 수백만 명이 나꼼수를 듣는 ‘나꼼수 현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꼼수에 대한 지지가 김씨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물론 오히려 주변 지역 선거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민주당이 ‘나꼼수 현상’을 과신하고, 김씨에 대해 국회의원으로 적합한지 여부를 꼼꼼하게 점검하지 않아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향한 민주당의 구애가 지나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해찬 전 총리 등 당내 유력 인사들이 안 교수에게 연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당내에 이렇다할 대선주자가 없다지만, ‘안철수 현상’과 ‘대선주자 안철수’를 구분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안 교수 지지율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나, 그렇다고 안 교수가 대선후보감인지는 속단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용민 교훈’ 벌써 잊었나
안 교수의 주된 지지층은 어느 정당에도 마음을 주지 않는 무당파(無黨派)다. 이들의 심정은 아마 이럴 것이다. ‘민생은 뒷전이고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싸움질하고, 부정과 식언을 일삼는 정치인들과 이를 용인하는 정치판을 확 뒤엎어버렸으면 좋겠다.’ 이들에게 안 교수는 정치판에 새 바람을 몰고 올 희망의 존재다. 이런 원군(援軍)이 있기에 안 교수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평소엔 입을 다물고 있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래서 ‘안철수 현상’에서 연상되는 안 교수의 모습은 ‘백마를 탄 왕자’에 비유된다.
‘대선주자 안철수’는 어떠한가. 총체적 실체가 베일에 싸여 있다. 성공 스토리와 소통·배려의 자세가 일부 알려졌을 뿐이다. 지지자들이 바라는 대로 그가 우리 정치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나아가 외교 국방 경제 등 국가적 현안에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사회 곳곳의 갈등을 조정할 통합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본인과 부인과 자식 부모 형제들의 인생역정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가 검증대 위에 올라가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쯤에서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깨끗할 거라 여겨졌던 박원순 후보에 대한 검증이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도덕적 흠결이 드러났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선에서의 검증은 서울시장 선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도가 셀 것이다. 안 교수 부친은 안 교수가 대선출마를 선언하면 난리가 날 것이라고 했지만, 검증과정에서 정말로 큰 난리가 날 수도 있다.
대선 즈음해 화려하게 등장했던 제3의 후보 가운데 대권을 쥔 사례가 없었다는 우리 정치사도 고려해야 한다. 고건 전 총리,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의 경우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일갈한 것처럼 ‘홧김에 서방질’한 무당파 지지층의 이탈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다.
민주, 당내 대선후보 키워야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길은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제대로 짚었다고 본다. 그는 “거머리가 득실대는 논에 맨발로 들어가 모내기 한번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내가 농사를 지었으면 잘 지었을 것’이라고 해도, 그 사람 지지율이 높다고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정치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좋은 대선 후보를 키울 생각은 않고 지지율에 일희일비하며 외부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김 지사 말대로 민주당은 훌륭한 대선후보를 키우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안 교수가 민주당에 다가갈 가능성이 생기고, 대선후보 단일화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