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5월

입력 2012-05-07 18:08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이양하의 ‘신록예찬’ 중)”

어린이날이 왜 5월에 있는지를 알겠다. 비갠 후의 5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가슴이 다 시원해진다. 피어나는 연록빛 나뭇잎들과 함께 황홀한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불릴만하다. 그래서인가 5월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소중한 절기가 많다. 살면서 감사할 일들이 많음은 참 좋은 일이다. 우리가 거저 받은 축복들, 소중한 만남의 인연들에 대해 한 숨을 멈추고 생각해 보며 주변에서부터 감사를 실천해 보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큰 놀이이며 잔치다. 사실 우리는 신이 베푸신 우주의 잔치상에 초대받은 거룩한 손님들이 아닌가.

5월을 묘사하는 말 중에 ‘가정의 달’이라는 말이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혼의 뿌리가 가정에서부터 비롯됐고 가정을 떠나 우리 삶의 행복을 말할 수 없기에 그렇다. 우리 안에 있는 ‘창조적 어린이’(creative child), ‘신성의 어린이’(divine child)도 결국은 가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환대’(hospitality)를 체험하고 어떤 양육과 사랑을 통해 살아왔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받고 사랑받았으면 우리안의 창조적 어린아이는 삶을 커다란 화폭처럼 여기고 마음껏 자신의 창조성인 끼와 꿈을 발휘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창조적 어린아이가 제대로 된 사랑을 체험 못하고 오염된 사랑이나 무관심으로 억압되고 무시돼 자신의 꿈과 끼를 잃어 버렸다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상처입은 어린아이의 혼’(wounded inner child)을 지닌 채 자신의 삶과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학교폭력을 보며 정말 가슴아프고 염려되는 이유는 가해자나 피해자나 저들이 안고 살아갈 상처입은 혼의 자취들 때문이다. 평생을 그 아픈 혼의 호소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끊임없는 전쟁터로 만들어갈 저 어린 혼들의 상처에 우리 사회가 아직도 별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이 우리를 더 절망케 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한다”는 소파 방정환 선생의 말은 만고의 진리이다. 어린이가 어린이다움을 일찍부터 잃어버리면 그 혼은 자신의 삶을 인질삼아 더 큰 보상을 추구하게 된다. 그 길은 참으로 막막하게 길고 요연해 많은 자원과 시간들을 투입해도 큰 효과를 얻기 어렵다. 평생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각종 중독성 장애, 충동조절 장애, 성격장애, 심인성 질환들은 어린 시절 가장 신뢰했던 사람들로부터 상처입은 혼들이 자신의 삶을 인질 삼아 벌이는 간절한 보상추구의 외침들이다. 상처입은 혼들은 또 다시 자신의 만남들을 상처로 물들이는 경향이 있다. 혼들은 서로 미워하면서도 서로 배우는 습성이 있으니까.

의사들은 의학 중에 최고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라 말한다. 병이 나면 고치기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우니 평소 건강관리를 잘 하는 것이 삶의 지혜며 현명한 몸의 투자라는 것이다. 혼의 건강을 위해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상처입은 혼을 치료하는 것은 상처입은 육신을 치료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으니 쉽게 접근하지도 못하면서 온갖 삶의 문제를 일으키는 진원지인 상처입은 혼들. 건강한 혼은 건강한 가정에서 자란다. 건강한 혼이 자라는 가정을 책임지는 어버이들이 되라고 오늘 어버이날을 주셨는지 모른다.

아랍의 속담에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언어를 배우라”는 말이 있다. 우리들의 자랑이요 사랑인 자라나는 세대, 순수한 혼을 지닌 우주의 잔치상에 늦게 온 저 거룩한 손님들에게 우리의 언어를 배우도록 윽박지르고 강요하는 가정과 학교, 사회가 아니라 저들의 언어, 저들의 몸짓들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며 저들의 언어를 배우는 5월, 가정의 달이 되었으면 한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