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살아 숨쉬는 추억이 깃든 그 길을 걷다… ‘다 같이 돌자 정동 한 바퀴’ 서울 정동 길
입력 2012-05-06 18:13
‘다 같이 돌자 정동 한 바퀴.’
서울 덕수궁과 경희궁 사이의 정동은 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깃든 동네다. 덕수궁 돌담을 돌아 중면전에 이르기까지 문화유산을 관람하는 정동 길 탐방 코스가 인기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이 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운영하는 ‘정동길 근대유산 도보 탐방’ 프로그램에는 5월 들어 하루 200여명이 참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프로그램은 정동에 있는 60여곳의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8곳을 돌아보는 순서로 진행된다. 구 러시아공사관(사적 제253호)에서 출발해 이화여고 심슨기념관(등록문화재 제3호)∼정동제일교회(사적 제256호)∼배재학당(서울시기념물 제16호)∼구 대법원청사(등록문화재 제237호)∼구세군중앙회관(서울시기념물 제20호)∼덕수궁 선원전 터(사적 제124호)∼중명전(사적 제124호)에 이르는 코스다.
구 러시아공사관은 르네상스식 3층의 벽돌 구조로 지은 건물로 1945년까지 공사관으로 쓰였다. 한국전쟁 중 건물이 파손돼 현재는 망루만 남아 있다. 미국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목사가 1887년 건립한 정동제일교회는 일제강점기 항일활동의 거점이었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때 이곳에서 독립선언문이 비밀리에 등사되기도 했다.
구 대법원청사 자리에는 1886년 조성된 관립 육영공원이 있었다. 189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재판소인 평리원이 들어섰고, 1928년부터 법원으로 쓰였다. 1948년 정부수립 후 대법원청사로 사용되다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2002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단장됐다. 코스 산책 중 미술관과 야외 조각공원에 설치된 작품을 관람하는 것도 괜찮다.
중명전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경운궁(덕수궁)의 황실 도서관으로 사용된 서양식 건물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이뤄지고,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현장이기도 하다. 이곳까지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 참가비는 없으며 7∼8월과 12∼3월은 휴무다. 얼마 전 탐방에 참가한 최성식(서울 자양중 2)군은 “역사도 배우고 산책도 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근대문화유산 1번지 정동 재발견-대한제국으로의 시간여행’을 마련한다. 25일 오후 3시 개막행사로 중명전에서 고종황제와 문무관들이 예복을 입고 외국공사들을 접견하는 의식을 재현한다. 25∼26일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정동 지역의 각 건축물과 터, 그리고 인물들을 찾아보는 역사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6∼27일 시민들과 함께하는 그림 대회 ‘정동, 근대시간을 담아내다’가 정동 일대에서 열리고, 26일 오후 5시 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에서 안종화 감독의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가 상영된다. 변사는 배우 조희봉이 맡는다. 26일 정동제일교회에서는 국내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공개된다. 이화학당 출신 유관순 열사가 이 악기 뒤에 숨어서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사연이 있다.
◇ 정동의 역사
정동(貞洞)이라는 지명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묘 정릉(貞陵)을 이곳에 처음 조성한 것에서 비롯됐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본부가 주둔했다.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극비리에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의 현장이기도 하다. 구한말 개항과 함께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외교공관이 잇따라 들어서고, 선교사들이 이곳에서 선교 교육 의료 활동 등을 펼쳤다.
정동에는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기록이 많다. 최초의 서양공사관 미국공사관(1883), 신식 민간 교육기관 배재학당(1885), 서양인 출생 앨리스 R. 아펜젤러(1885), 신식 여성 교육기관 이화학당(1886), 민간 출판사 배재학당 삼문출판사(1888), 민간 신문사 독립신문(1896), 전화 개통 경운궁(1896), 서양식 개신교회 정동제일교회(1897) 등을 들 수 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