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없는 美人圖, 짜릿한 폭포의 매혹… 사석원 ‘산중미인’展

입력 2012-05-06 17:56


‘산중미인(山中美人)’이라. 산속에 미인이 있다는 얘기인데 그림에 미인은 없다. 그 대신 폭포가 있다. 그런데 폭포가 예쁘다. 물줄기를 콸콸 쏟아내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듯하고 주변에 꽃으로 치장한 자태가 아름답다. 그러니 산중미인은 다름 아닌 폭포라는 사실을 알겠다. 11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여는 사석원(53) 작가의 신작들이다.

‘2010년 아프리카를 소재로 한 ‘하쿠나 마타타’ 전시 이후 작가는 전국의 폭포 100여곳을 답사했다. 동국대 동양화과를 나와 오랫동안 기운생동(氣運生動)의 붓질을 해온 작가로서 폭포의 웅혼한 생명력을 화폭에 가득 담아내고 싶은 갈망 때문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폭포는 비가 많이 와야 물이 많다. 주로 여름 장마철에 떠난 그의 폭포 유람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기껏 찾아갔더니 볼품이 없어 화면에 옮기지 못한 폭포가 절반 이상이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폭포 그림 40여점 가운데 최고의 절경을 꼽으라면 금강산 구룡폭포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찾아가느라 고생깨나 했다는 제주도 서귀포 엉또폭포란다. 그렇게 만난 폭포를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은 아니다.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제외하고는 주변 풍경을 재해석했다.

폭포를 배경으로 호랑이 한 마리 유유자적하게 앉아 있는 그림도 있고, 부엉이의 커다란 두 눈동자에 폭포가 담긴 그림도 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황소와 코뿔소가 있는 작품은 폭포의 순박함과 역동성을 대변하고 있다. 미인은 아니지만 퉁퉁한 몸매의 여성 한 명이 폭포 앞에 앉아 있는 그림도 있다. 지난 시절의 회한을 폭포를 통해 모두 씻어버리기라도 하겠다는 포즈다.

이번 전시의 영어 제목은 ‘Secret Paradise(비밀의 천국)’이라고 했다. 폭포와 함께 있는 산중미인이야말로 자신이 꿈꾸는 이상형이자 마음 속 풍경이라는 얘기다. 작가는 “폭포를 찾으러 산 속으로 들어가면 점차 마치 산 속에 숨겨져 있는 미인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듯이 보이는데, 실제로 보지 않으면 그 미의 정도와 매력을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감을 가장 많이 쓰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튜브에서 갓 짜낸 물감을 두께가 3∼4㎝ 될 정도로 화면에 높이 쌓는다.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납작한 서양화 붓이 아니라 모필이 살아 있는 동양화 붓을 사용한다. 물감을 많이 바르는 이유에 대해 그는 “겨울철에 이불을 덮는 것처럼 따뜻한 정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술시장에서 그림이 잘 팔리는 인기 작가인 그의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온다. 울긋불긋 꽃들과 해학적인 동물들이 어우러져 상상 속의 이상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는 그는 항상 새로운 작업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지난 2년 동안 폭포 유람을 다닌 그의 붓질이 기운을 북돋운다(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