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 자리에 돌아와야 할 훈민정음 상주본
입력 2012-05-06 18:25
국보급으로 평가 받는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 기증식이 오늘 오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다고 한다. 문화재를 기증받는 일이야 새삼스럽지 않지만 이번 행사가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문화재청이 개인으로부터 실물 없는 권리를 넘겨받기 때문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사연을 들어보면 기가 막힌다.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후진적 인식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2008년 7월 말 경북 상주에서 발견돼 ‘상주본’으로 불리는 이 책은 현재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간송미술관 소장 해례본과 마찬가지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와 동시에 출간된 한문해설서다. 서문 4장과 뒷 부분 1장이 떨어져 나갔어도 보존 상태가 워낙 좋다. 여기에다 간송본에 없는 표기와 소리 등에 대한 당시 연구자의 주석까지 달려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상주본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원소유주인 조모씨와 이를 가져간 배모씨간의 소유권 다툼이 법정으로 비화돼 대법원이 조씨가 주인이라고 판결을 내렸는데도 배씨가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탓이다. 배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후에도 입을 꽉 다물고 있다. 석방된다 하더라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문화재청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으로 때우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배씨 집을 압수수색해도 찾지 못했고 법원도 집행관을 통해 회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번에 실물 없는 기증식을 여는 것도 배씨의 심경변화를 바라는 노력의 일환이다.
문화재는 개인의 소유를 넘어 전 국민이 향유하고 후손에 고이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일본 궁내성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 중인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는 판에 국내에서 발견된 국보급 문화재마저 찾지 못한다는 것은 딱하면서도 창피한 일이다. 일각의 소문대로 이미 외국으로 반출됐다면 심각한 일이다. 문화재청은 백약이 무효라고 포기하지 말고 좀 더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 자랑스런 상주본 실물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