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카네이션

입력 2012-05-06 18:27

1907년 5월 12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의 성 앤드류 감리교회에서는 조촐한 추모 예배가 열렸다. 애나 저비스가 2년 전 숨진 어머니 앤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교회는 어머니가 생전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곳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북전쟁 참전자나 전사자를 아들로 둔 어머니들의 자원봉사 클럽을 조직한 인물이었다. 그는 군 숙영지에서 장티푸스 퇴치를 위한 위생 활동을 벌였고, 남·북군을 가리지 않고 부상병을 치료했다. 전쟁이 끝난 1868년에는 분열된 가족들을 화해시키기 위한 ‘어머니 친목의 날’ 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런 모친을 기리며 애나는 예배에 참석한 다른 어머니들에게 흰 카네이션 500송이를 전했다. 어머니가 생전 가장 좋아하던 꽃이었다. 애나의 추모 예배는 필라델피아 사업가 존 워너메이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듬해 5월 그의 후원 아래 성대한 추모식이 열렸고 어머니날 제정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1912년 웨스트버지니아주가 정식으로 어머니날을 제정했고 연방의회는 1914년 5월 둘째 주를 어머니날로 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어머니날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는 56년 어머니날을 제정했다가 ‘아버지날은 왜 없느냐’는 여론에 따라 73년 어버이날로 이름을 바꿨다.

애나는 그러나 얼마 뒤 어머니날 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다. 상업주의가 문제였다. 그녀는 흰 카네이션과 붉은 카네이션의 용처를 구분하는 화훼업자들의 상술을 비난했고, 감사카드를 “편지조차 쓰지 못하는 게으름을 위한 형편없는 양해”라고 비판했다. 전 재산을 털어 반대운동을 하다 체포되기도 한 그녀는 48년 빈털터리에 독신으로 세상을 떠 어머니 옆에 묻혔다.

어머니날은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휴일 가운데 하나다. 미국인들은 매년 카네이션을 사는데 26억 달러, 온천효도관광 같은 선물을 사는 데 15억 달러를 쓰며 축하카드 매출액은 68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국내 식품회사가 부모 중 54%가 어버이날 가장 받기 싫은 선물로 카네이션을 꼽았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외국산 카네이션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당국이 특별단속을 실시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부모 된 입장에서 카네이션이 희든 붉든, 외국산이건 국산이건, 혹은 꽃이 아예 없다한들 뭐가 문제겠는가. 요즘 같은 험한 세태엔 꽃을 올리고 싶다는 작은 마음 하나만 있어도 갸륵하고 감사하지 않은가.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