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찬규] 中 망명사건, 미국이 당할 것인가

입력 2012-05-06 18:26


산아정책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가택연금을 당해오던 중국 시각장애 인권 변호사 천광청(陳光誠·41)이 4월 21일 산둥(山東)성 둥스구(東師古)촌 자택을 탈출해 지난달 27일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에 잠입했다. ‘영화 같은 탈출’에 성공한 천 변호사에게 미국 대사관이 부여한 것은 ‘외교적 비호’다.

외교 비호 둘러싼 갈등

국제법상 비호에는 외교적 비호와 영역적 비호가 있다. 전자는 자국에 주재하는 외교공관에 들어가 비호를 청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외국으로 탈출해 해당국에 비호를 청하는 경우다. 영역적 비호의 경우는 탈출자가 외국 영역에 있기 때문에 관계국가 간에 범죄인인도조약이 없으면 영역국가에는 그를 인도해야 할 의무가 없다. 범죄인인도조약이 있더라도 정치범이면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의해, 당해 영역국가의 국민이면 자국민 불인도의 원칙에 따라 인도할 의무가 없다.

외교적 비호는 외교공관이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재국 주권에 대한 침해가 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인정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1948년 10월 3일 페루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당일로 진압된 일이 있었다. 지하에 숨어 있던 쿠데타 주모자가 이듬해 1월 3일 리마 주재 콜롬비아 대사관에 들러 비호를 구하고 대사관측이 이를 허여했다.

이것이 불씨가 돼 페루와 콜롬비아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양국간 합의에 의해 국제사법재판소에 부탁되었다. 1950년 11월 20일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영역적 비호의 경우는 망명자가 비호 부여국 영역 내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나 외교적 비호의 경우에는 망명자가 그 나라 영역 내에 있기 때문에 그에게 비호를 부여하게 되면 그 나라 주권에 대한 훼손이 일어나기에 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외교실천에 있어서는 다르다. 미국은 해외 공관에 외교적 비호를 인정치 않을 것을 엄명하고 있지만 ‘폭도들의 추적’이 있는 경우에 잠정적으로 허여할 수 있다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1989년 5월 베이징에서 부정 척결과 자유화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던 이 시위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대되고 천안문 광장에는 최고 200만명의 인파가 모여 들었다.

미·중간 치열한 수싸움

이에 놀란 중국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고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베이징의 대학살’을 감행했다. 이어 검거 선풍이 휘몰아치자 당시 베이징대학 교수이던 반체제 천체물리학자 팡리지(方勵之)가 부인 리슈시안과 함께 6월 5일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에 피신했다. 팡리지 부부는 1년 후인 1990년 6월 25일 미 군용기편으로 영국에 들렀다가 미국으로 갔다.

국제법상 외교적 비호가 인정되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역국 관리가 외국공관에 들어가 망명자를 연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공관에 인정되는 외교특권 때문이다. 1989년 12월 20일 미군이 파나마를 침공하자 파나마 실력자 노리에가는 로마 교황청 공관에 은신했다. 공관진입을 못한 미군이 압력수단으로 공관에 고강도 탐조등을 비추고 확성기를 통해 로큰롤 음악을 틀어대자 견디지 못한 노리에가가 제발로 걸어나와 미군에 투항했다.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에 피신했던 천광청 변호사는 신변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중국 정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중국을 떠나지 않겠다고 공언한 후 탈출 도중 다친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베이징 내 한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지금 외교특권이 인정되는 미국 대사관 안에 있지 않고 중국 주권 하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정부가 마음 먹은 대로 그에 대한 처리를 할 수 있음을 뜻한다. 부당한 처리에 미국이 항의는 할 수 있겠지만 그에 대한 신병처리 권한은 중국에 있다.

중국은 일단 그의 미국 유학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나 어떻게 귀결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이번 일에서 미국이 너무 서두른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중국에 당한 듯한 측면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절대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본다.

김찬규 국제해양법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