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문제를 다른 눈으로 보라
입력 2012-05-06 17:56
학창 시절, 학교 성적을 좌우했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수학문제는 배점이 높고, 상대적인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우열을 가리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내고, 대개 거기에서 희비와 당락은 엇갈린다. 그렇다. 어려운 문제는 기회였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어렵다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축복의 배점도 높다는 뜻이리라. 출애굽 백성들을 보면서 이것을 절감했다.
이스라엘 백성 1세대들이 광야에서 경험했던 결정적인 실패는 가데스바네아의 실패였다. 돌아온 정탐꾼들은 가나안 점령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고,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믿음을 포기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저주하셨다.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포를 슬퍼하면서 느닷없이 가나안 점령을 시도하겠노라고 일어났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용기일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전투의지를 축복하지 않으셨다. 올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패하여 도망을 치는 쓴 맛을 보고야 말았다. 생각해보라.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들이 진작 이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처음부터 다른 눈으로 문제를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 이제는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었다. 기회는 지나가버렸다. 그들을 찾아왔던 어려운 문제는, 혹자의 말 그대로 ‘변장하고 찾아온 축복’의 다른 모습이었다. 하나님의 기회였다.
앞에서 기회를 알아보는 자는 쉽게 붙잡지만, 지나가고 난 뒤에는 다시는 붙잡을 수 없다. 어려운 문제 앞에 부딪힐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한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와중에 그것을 기회로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이해할 수 있다. 잘 모르면 외우자고 했지만 사실은 쉽지 않다.
한 마을에서 늑대들로 인한 피해 때문에 늑대를 잡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주겠노라는 현상금이 걸렸다. 두 소년이 현상금 사냥꾼이 되어서, 늑대를 찾아 돌아다녔다. 어느 날 들판에서 잠을 자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수 십 개의 눈들이 그들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바로 늑대들이었다. 먼저 이것을 본 친구는 공포로 인하여 온 몸이 완전히 얼어붙는 듯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친구는 그 순간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친구야, 이제 우리는 부자야!” 고난은 기회다. 연습하고 외우자. 어려운 문제가 나온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내 실력을 인정하신 것이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우리도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쳐보면 어떨까? ‘우리도 이제는 부자야!’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