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3차 퇴출 파문] 문 열기도 전에 장사진…한 곳서 이틀새 1500억 인출
입력 2012-05-04 21:48
3차 저축은행 구조조정 발표를 앞둔 4일 일부 저축은행의 예금인출액은 평소보다 5∼6배, 최고 10배 가까이 늘었다. 또 비교적 우량한 저축은행에도 해약고객들이 크게 몰려 우려했던 뱅크런 현상이 저축은행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이 나타나는 등 시장 혼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자금부족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된 A저축은행의 경우 오전 문을 열기도 전에 해약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은행 측이 번호표를 나눠줬다. 앞선 번호표를 받기 위한 고객들의 몸싸움이 심해지고 대기자가 수백명으로 늘어나자 저축은행 측은 한때 번호표 발행을 중단하기도 했다. 저축은행 측은 “5000만원까지는 법으로 보장하니 예금인출을 자제하고 신중히 판단해 달라”고 당부했으나 성난 고객들은 “내 돈 물어내라”며 거칠게 항의해 창구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A저축은행은 오전 본점 예금인출 대기인 수가 1100명을 넘어서자 번호표 발급을 일시 중단했다. 주부 최모(41)씨는 은행 업무가 시작하자마자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서울 마포의 A저축은행 지점을 찾아 번호표 받은 뒤 오후 3시30분 예금을 찾았다.
이 저축은행의 평소 하루 평균 인출액은 100억원 정도였으나 이날에는 약 10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에는 500억원 정도가 인출됐다. 은행 측은 대기표를 받은 고객은 모두 인출처리를 해줄 방침이다.
예금자보호법상 정부가 원리금 5000만까지 지급을 보장하고 있으나 저축은행을 찾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예금액이 5000만원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 측은 예금보험공사에서 배포한 ‘예금자보호제도’ 안내문을 객장 입구에 붙이는 등 혼란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으나 고객들의 불안감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수년 전 받은 명예퇴직금을 몇 개의 저축은행에 2000만원씩 분산투자했던 주부 김모(38)씨도 오전 9시 B저축은행 서울 을지로 지점을 찾았다. 김씨는 “원리금이 5000만원이 안 돼 안전한 줄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불안해 은행에 갔다”며 “아침 일찍 갔는데도 대기번호가 700번이 넘어 예금 해약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C저축은행을 찾은 70대 노인은 대기자가 크게 늘어나 업무 처리가 늦어지자 “뭐하는 거냐. 당장 내 돈 내놔라”며 거칠게 항의했으며 나머지 대기자들도 불안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원 김모(47)씨는 “이자를 더 준다기에 집사람 몰래 저축은행에 예금한 돈이 있는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D저축은행에도 비슷한 현상이 빚어졌다. 예금자보호한도를 넘는 고액을 예치한 것으로 알려진 60대 아주머니는 “평생 장사해서 모은 돈이다. 돈을 내주기 전에 떠나지 않겠다”고 소리를 쳤다.
문제는 비교적 경영상태가 양호한 저축은행에도 예금인출사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E저축은행은 ‘당사는 영업정지 대상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객장입구에 붙이기도 했다. 또 “퇴출대상 저축은행이 아니냐. 내 돈은 괜찮는가”라는 문의전화로 폭주해 업무에 차질을 빚었고, 인터넷 접속량이 폭주하는 바람에 한때 저축은행 인터넷 접속이 지연되기도 했다. 일부 지방 저축은행에도 예금인출이 있었으나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편 저축은행중앙회는 뱅크런 확산에 대비, 3조원 이상의 긴급자금을 마련해 뒀다.
박현동 기자·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