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자 몰트만 교수-박종화 목사 대담] “하나님은 사랑이고 정의, 인간에게 기쁨과 공의를 주셔”

입력 2012-05-04 18:11

박종화 목사와 몰트만 박사의 대담은 시종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했다. 박 목사가 여러 신학적 주제와 국내외 현안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몰트만 박사가 이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몰트만 박사는 탁월한 신학적 통찰과 혜안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갔다.

-서울신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3일 개최된 세계석학초청 국제학술대회 강연 차 한국을 방문하셨다. 강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이라 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가장 강렬한 생명의 경험이자 하나님 경험이다. 사랑의 기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사랑이 충만해야 할 고린도교회에 분열이 일어난 것은 자기사랑이 지배했기 때문이다. 생명사랑은 생명의 창조자가 빠지면 죽음사랑으로 변질될 수 있다. 죽음사랑은 오늘날 테러리즘과 핵무기 위협, 빈부격차로 나타난다. 인간이 경험하는 사랑결핍은 결국 하나님의 결핍이다.

나는 1943년 전쟁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 사랑을 경험했고 새로운 생명에 눈 뜨게 됐다. 그때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셨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으며, 십자가에 달리고 죽임을 당하신 후 부활하셨다. 부활은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한다. 따라서 개인, 사회, 정치적 생명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때 거룩하게 변한다.”

-간디는 비폭력 운동을 펼쳤다. 비폭력 저항운동인 사랑운동은 어떤 힘이 있는가.

“비폭력적 방법으로 폭력을 극복하는 게 예수님의 마음이다. 동독이 해방되기 전까지 라이프치히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비폭력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결국 이것은 동독이 무너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비폭력운동은 폭력을 무너뜨리는 사랑의 방법이다. 통독은 비폭력 사랑운동이 낳은 대표적 결과다.”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정의라 할 수 있다.

“정의는 사랑보다 더 합리적이다. 정의는 사회적인 것이며 불의한 사회의 균형을 창출해낸다. 정의는 조화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열쇠다. 하나님의 정의는 모든 생명을 돌보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복 대신 용서를 가르친다. 하나님의 정의는 죄인을 용서하고 값없이 생명의 미래를 열어주는 창조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정의는 히틀러의 암살계획을 세웠던 본회퍼처럼 과감하게 내세워도 되는 것인가.

“본회퍼는 히틀러가 없어져야 독일 국민이 산다고 신학적 해석을 했다. 미친 운전사를 끌어내려야 차를 멈추게 하고 대량살상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 히틀러 치하에서 많은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는 압살상태에 놓여 있었다. 즉 히틀러를 죽이자는 게 아니라 압살당한 정당한 저항권의 회복을 주창한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정당한 저항권 행사의 일환으로 그 말을 한 것이지 죽이자는 것이 목적 자체라고 할 수 없다.”

-정의 문제를 생각할 때 양극화 문제가 떠오른다.

“빈부의 격차가 있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양극화가 공동체 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해선 무조건적 평등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부여되는 기회균등을 제공해야 한다. 부자가 수익을 많이 내는 것을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정당하게 세금을 많이 납부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면 그것은 사회 도덕적으로 인정받고 칭찬할 사안이다. 돈을 많이 번만큼 세금도 많이 납부 해 남을 돕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쁨의 조건 아닌가.”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성공한 것인가.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나.

“공산권 붕괴로 사회주의는 망했다. 사회주의는 사회를 인간이 없는 곳으로 오판했다. 그게 잘못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존재의 가치로 보지 않고 인간이 가진 것을 가치로 봤다. 잘못된 자본주의 때문에 인권까지 말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이데올로기는 항상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의 사랑에서 철저히 비판정신을 갖고 사회를 바라봐야 한다."

-한국교회는 북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북한에 자유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다. 그렇다고 동포인 이웃이 홀로 고통당하는 것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북한 주민을 동포로 여기며 보살펴야 한다. 그래야 통일이 되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인터넷이나 휴대폰, 인터넷, 라디오 등으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도 ‘아랍의 봄’처럼 분명 해방될 것이라 믿는다.”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부산에서 열린다. 마침 주제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이다.

“매우 좋은 주제다. 중요한 문제다. 생명과 평화, 정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개인적인 희망으로는 여기에 자유를 포함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생명 정의 평화와 함께 자유를 외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자유는 우리를 즐겁게 하며 우리를 새롭게 한다. 자유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돼야 한다. 북한에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 교회에 대한 사회적 공격이 극심해 한국교회가 많이 의기소침해 있다.

“독일교회는 독일 패망 이후 히틀러 치하에서 잘못을 고백했다. 이것이 바로 1945년 10월 발표된 ‘슈투트가르트 죄책고백’이다. ‘더 용감하게 신앙고백을 하지 못했고 더 진실하게 기도하지 못했으며, 더 즐겁게 신앙속에 살지 못했으며,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음’을 참회한 것이다. 이후 독일교회는 다시 신뢰성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교회가 만약 비판을 받고 있다면 공개적으로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이런 공적행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희망 메시지의 본질이다.”

-교회가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된 한국적 상황에서 사회 책임과 교회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교계 안에서 높아지고 있다.

“교회는 공공의 신학, 공공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기독교적 양심에 입각하여 하나님 나라의 공적 신학을 정립하고 거리에서 외쳐야 한다. 교리와 신학은 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 세계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것들이다.”

-한국교회가 시급히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교회는 오랜 전통에 묶여 젊은이들을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 젊은이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교회에 젊은이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향후 연구계획은 무엇인가.

“이번에 ‘희망의 윤리’(대한기독교서회)를 내놓았다. ‘희망의 신학’이 희망의 원리를 이야기 했다면 이번 신간은 윤리적 실천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앞으로 ‘기쁨의 신학’을 준비할 예정이다. 성서는 기쁨에서 출발해 기쁨으로 마감한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기쁨으로 간다. 나의 연구가 ‘희망의 신학’에서 ‘희망의 윤리’로 갔듯 희망도 기쁨으로 갈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 기쁨을 넘어 공동체의 기쁨, 자유를 의미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사진=조재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