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청 사건] 美의 오판… ‘천광청 신병처리’ 中전략에 당했다
입력 2012-05-03 21:53
“미 대사관은 나에게 떠나도록 압박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우리 가족이 나갈 수 있게 모든 일을 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비행기 편으로 떠나고 싶다.” (천광청, CNN·데일리비스트 인터뷰)
“그는 결코 압력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대사관을 떠나는 데 대해 들떠 있었고 그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게리 로크 주중 미 대사)
천광청(陳光誠) 변호사가 베이징 차오양(朝陽)병원에 입원한 뒤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중·미 양국은 하루 전만 해도 “그를 중국 내 안전한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천광청은 3일 새벽 CNN 인터뷰에서 대사관 측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났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천광청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전하면서 “그가 미국 대사관을 떠나지 않으면 중국 당국이 아내를 때려죽이겠다고 위협했다”는 말을 천광청이 미국 관리들로부터 들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이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 중국에 남고 싶어 하는 천광청의 뜻을 이루면서 중국 당국으로부터 ‘안전 보장’ 약속도 받아냄으로써 상당한 외교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였으나 하루 만에 수세에 몰린 것이다.
미국의 다급한 처지는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대변인의 이메일 성명에서도 읽힌다. 뉼런드 대변인은 “미국 관리들이 가족 위협 사실을 천광청에게 말한 적이 없다”면서 “중국 관리들이 그런 위협을 우리 측에 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그가 대사관에 계속 머문다면 가족 재회는 힘들 것이라고 중국 관리들이 암시한 적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국 내에서 강한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천광청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망명 기회를 제공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중(反中) 인권단체 ‘차이나에이드(ChinaAid)’의 대표 푸시추(傅希秋)는 “미국이 천광청을 버렸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전략경제대화를 앞두고 사태 해결을 너무 서두르는 과정에서 상황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반면 중국은 치밀한 계산을 했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선 천광청이 병원에 입원한 2일 저녁 7시가 좀 지나자 병원 당국은 천광청을 지키고 있던 미국 외교관들을 병원에서 떠나도록 했다. 이에 천광청은 자신이 또다시 중국 당국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두려움을 느껴야 했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발언을 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천광청 탈출을 도운 인권운동가 후자(胡佳)의 부인 쩡진옌(曾金燕)은 3일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가택연금에 처해졌다고 밝혀 중국 당국의 계획된 ‘시나리오’를 확인시켜 주었다.
중국은 일단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챙긴 모양새다. 천광청을 미국으로 보내지 않음으로써 위신을 세웠고, 외교부 브리핑을 통해 미국에 큰소리를 치며 사과를 요구함으로써 명분도 쌓았다. 미국이 그의 거취 문제를 재론하더라도 상황 변화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