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옛책의 가치
입력 2012-05-03 18:33
뉴스위크 최근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변호사 출신 소설가로 국내에도 적지 않은 팬을 갖고 있는 존 그리샴의 실수담이다. 1989년 처녀작 ‘타임 투 킬’이 출판됐을 때 본인이 무명작가인데다 출판사도 이름 없는 곳이라 양장본 5000부를 발행해 이 가운데 자신이 1000부를 구입했다.
그리샴은 지역 도서관에서 대규모 출판기념 파티를 열었지만 도대체 책이 팔리지 않아 의뢰인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기도 했다. 그래도 책이 남아돌아 문이 닫히지 않도록 괴는 도구 등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그 책이 요즘 권당 4000달러 안팎을 호가한단다. 어림잡아 400만 달러를 손해 본 셈이라는 것.
놀라운 것은 그렇게 오래된 책도 아닌데 한권 값이 무려 400만원이나 된다는 사실. 우리나라 문인들이 엄청 나게 부러워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화재로 등록된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도 값으로 따지기 어렵겠지만 이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미당의 ‘화사집’ 초판도 그 정도는 아니다. 이광수의 ‘무정’ 초판도 몇 십만원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작가의 초판이 이 정도 가격이라면 다른 작가의 오래된 책값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책도 하나의 상품이라 희귀성과 소장가치 등이 어우러져 값이 매겨질 것이다. 고서계에서는 한적(漢籍)이 가장 값이 비싸다고 한다. 조선총독부에서 찍은 대단치 않은 한정판 한적도 10만원을 웃돈다. 우리 작가의 시집이나 소설집이 한적에 비해 값이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만큼 찾는 사람이 적다는 방증이기도 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고 박완서의 처녀작 ‘나목’을 초판 형태 그대로 한정판으로 찍어 펴낸 책값이 10만원에 불과하다. 요즘은 사라진 세로 활자로 된 책을 읽는 느낌이 꽤 괜찮았다. 사실 책의 진짜 가치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값을 매기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참고서나 교과서를 제외한 책을 잘 찾지 않기 때문에 옛책 값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올해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독서의 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책 좀 읽어보라고 권하는 자체가 후진적인 문화라는 비판의 소리도 없지 않다.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라는 구호 아래 한해에 책 12권 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주 5일 수업제와 연계한 도서관 가기와 동네서점 가기 운동도 펼친다고 한다. 이번 주말에는 한 권의 책과 벗하기를.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