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박수근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꿈꾸는 징검돌’

입력 2012-05-03 17:50


꿈꾸는 징검돌/글·그림 김용철/사계절

한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은 오늘도 그림을 그리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섭니다. 그런데 그만 개울의 징검돌을 건너다 물에 빠지고 말지요. “아이코, 엄마야!” 소년은 까만 숯 몇 개를 주워 옷이 마를 동안 징검돌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물고기 두 마리가 첫 징검돌에 그려집니다. 물 속에 있던 물고기가 물 바깥에 나와 세상 구경을 하는 게 신기합니다. 다음 징검돌엔 빨래 아주머니를 그립니다. 아까 물에 빠진 소년을 보고 깔깔대며 웃던 아주머니지요. 다음엔 아기 업은 이웃집 여자 아이 복순이지요. 일하러 간 엄마 대신 하루 종일 혼자 아기를 돌보는 수줍은 소녀지요. 징검돌은 많기도 해서, 어미 소도, 어머니도, 옆집 아주머니도 그려보는 화폭이 됩니다. “퐁당” 그때 작은 돌멩이 하나가 소년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징검돌 옆으로 떨어집니다.

뒤를 돌아보니 동생을 업고 있는 복순이가 징검돌에 서 있습니다. 소년은 장에 가는 소녀를 따라갑니다. 그렇게 멀리멀리 누군가를 무작정 따라가 보는 게 소년이며 소녀의 초록빛 시절이지요. 초록은 경계가 없으니까요. 떡집을 지나다가 소년과 소녀는 취떡을 하나씩 얻어먹기도 합니다. 소년이 사는 배꼽마을은 5월이면 취나물이 지천이어서 취떡도 해먹고 반찬도 만들어 먹지요. 복순이는 동생이 칭얼대자 동네로 돌아옵니다. 마을 한복판에선 농악소리가 들려옵니다. “꽹꽹 꽤개갱 꽹꽹 꽤개갱”

해는 저물고 장에서 돌아오는 마을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징검돌을 건넙니다. 할머니도 아주머니도 강아지도 송아지도 소년의 자전거도 엿장수도 짐꾼아저씨도 정검돌 하나하나를 밟으며 개울을 건넙니다. 소년이 그린 징검돌의 그림이 마을사람들의 행렬과 다르지 않습니다. 소년은 커서 화가가 되었답니다. 서민화가, 국민화가로 칭송받는 화가 박수근의 소년 시절 이야기랍니다.

소년은 의당 그래야 합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개울을 건너다 물에 빠지지 않았다면, 징검돌을 밟고 다른 세상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소년은 화가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징검돌을 갖고 태어난답니다. 징검돌에는 그것을 밟고 지나갈 소년과 소녀의 얼굴이 새겨져 있지요. 그런데 배꼽마을이 무슨 뜻이냐고요? 박수근 화가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는 국토의 가운데 있다고 하여 배꼽이라고도 불린답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