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승부의 명암과 기세

입력 2012-05-02 18:33


지난달 24일 한국기원에서 제17회 LG배 세계기왕전 통합예선 결승전이 열렸다. 통합예선 4회전에서 승리한 한국 12명, 중국 17명, 일본 3명 등 32명의 기사들이 통합예선 결승을 치렀다. 한국은 이영구 박승화 나현 최기훈 등 4명만 본선 32강에 진출했으나 중국은 12명이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은 모두 패했다.

이날 중국기사와 대결한 한국기사는 모두 7명. 한·중·일 삼국지로 일컫는 세계바둑 구도에서 한국이 최정상이라고 자부하기에 내심 본선 진출자가 많기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나현 초단만이 중국의 판팅위에게 승리해 중국과의 종합전적은 1승6패에 그치고 말았다.

우울한 성적표를 받고서야 성급하게 승부를 짐작하는 잘못을 범했음을 깨달았다. 쉽게 승부를 예측하는 행위는 칠흑 같은 어둠에서 상대방과 격돌하며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는 승부사에게 미안한 일이다.

한 수 한 수 명암이 엇갈리는 바둑을 빗대어, 혹자는 흑과 백이 얽히고설켜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반상을 ‘한 폭의 수묵화’ 같다고 하지만 승부사는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는 양육강식의 세계를 느낀다.

그러나 9전 전승의 대기록으로 완벽한 승리를 쟁취한 무적함대도 있었다. 지난달 28일 중국에서 열린 제1회 화정차업배 세계여자단체전에서 박지은 조혜연 김혜민은 9전 전승으로 우승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화정차업배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4개국이 참여해 3명씩 한 팀을 이루어 3라운드의 리그전을 치른다.

한국은 26일 1라운드에서 대만을 3대 0으로 가볍게 따돌렸고, 27일 루이나이웨이 9단이 속한 강력한 우승후보 중국을 3대 0으로 대파했다.

같은 날 치러진 경기에서 또다시 일본을 3대 0으로 침몰시키며 리그성적 3전3승, 개인승수 9승이라는 완벽한 우승으로 중국 대륙을 흔들어 놓았다. 중국은 리그성적 2승1패, 개인성적 5승4패로 준우승을 차지했고 일본과 대만이 그 뒤를 이었다.

무적함대 태극낭자들은 LG배 세계기왕전에서 한국이 보여준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승부는 알 수 없다. 객관적 열세가 있더라도 불타오르는 기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두 대회를 통해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은 화정차업배 세계여자단체전에서 완벽한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LG배 세계기왕전은 본선시드 16명이 합류해 6월부터 32강전을 치를 예정이다. 본선시드에는 전년도 준우승자 이창호를 비롯해 이세돌 박정환 강동윤 최철한 원성진 등 6명이 포함돼 있다.

알 수 없는 승부의 세계에서 명암이 엇갈리겠지만 불타오를 한국기사들의 기세를 믿고 기다려 보자.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