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수정이의 손을 잡아주신 하나님
입력 2012-05-02 18:11
자리 자리마다 연초록으로 가득한 요즘은 참 좋은 날입니다. 출근길에 만나는 가로수들도 연초록으로 물들어 눈길 닿는 곳마다 가슴 뛰게 하는 오월입니다. 지금 계신 곳에서 조금만 머리를 세우고 보시거나, 발꿈치를 살짝 들어 멀리 있는 나무들을 보아주시면 어떨까요? 아니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봄의 물기를 머금은 하늘을 보시면 어떨까요? 새롭게 사람을 만나고 그 관계를 열어가는 일 또한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일이기에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이렇게 좋은 계절이라면 살짝 한 발자국 내딛어 보고 싶어집니다.
수정이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흥이 많고 춤추는 일을 아주 좋아하기에 예술고교에 진학해 열심히 배우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자신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수정이는 호적상에는 엄마가 없지만 실제로는 두 분의 엄마가 있습니다. 수정이가 한 살 되던 무렵부터 키워주셨고 지금도 함께 살고 있는 엄마, 호적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수정이를 낳아준 엄마, 그렇게 두 분의 엄마가 있답니다.
자신에게 두 명의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이었습니다. 어린 수정이에겐 참 무겁고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형편에 남들이 다 다니는 학원이나 과외공부는 엄두를 내지 못했고, 새 옷을 입고 뽐내는 친구들을 보면 괜히 성질이 났던 수정이는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수정이를 학교와 또래 친구들은 문제 학생으로 지목해 손가락질 하기도 하고 두려워서 피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수정이가 택한 생존방식은 고슴도치처럼 날카롭게 가시세우기였던 것 같습니다.
거침없이 아이들과 싸우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진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그렇게 수정이는 멍들어 갔고 자신을 닫아 버렸습니다. 수정이가 가출을 했다고 함께 사는 엄마는 그 추운 날 얇은 가을 점퍼를 입고 수정이를 찾으러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왜 옷을 그리 입고 다니시냐고 물어보니 ‘아이가 집을 나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미라는 사람이 어떻게 뜨뜻한 방에서 다리 뻗고 잘 수 있으며 두꺼운 코트를 입을 수 있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용감한 엄마가 그렇게 찾아다닌 끝에 친구 집을 전전하던 수정이를 찾아내 집으로 데려 올 수 있었습니다. 돈 한 푼 없이 가출하였던 수정이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다 팔아버렸습니다. 다시 집에 들어온 수정이가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책가방부터 필통까지 모두 사야 했습니다. 다른 식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수정이 엄마는 하나씩 하나씩 장만하였습니다.
수정이 엄마는 허리병도 있고 관절염도 앓고 계신, 연세가 환갑을 넘으신 할머니이십니다. 가욋돈을 마련하기 위해 식당일 파트타임으로 나가기도 하고 때론 아기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수정이가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마련하였지요. 수정이가 갖고 싶었던 브랜드 옷이 있었는데, 그 옷이 꽤 비쌌기에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엄마에게 수정이는 화를 내면서 또 집을 나간다고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수정이 엄마는 그저 묵묵히 빨래한 옷을 개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소리를 지르면서 씩씩거리던 수정이의 눈이 무심결에 옷을 개는 엄마의 손길 끝에 머물렀습니다. 너덜너덜한 러닝셔츠, 고무줄 부분이 다 삭아 얇아진 것이 보이는 속옷... 모두가 수정이 엄마 옷 이었습니다. 수정이는 옷을 개던 엄마의 손을 제치고 낡은 속옷더미를 집어 던졌습니다.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에 눈물이 솟구친 수정이는 엄마를 안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엄마도 자신을 결국 외면할 것이라고, 자신을 낳은 엄마가 자신을 버렸듯이. 그게 가장 두려웠노라는 수정이는 정말 엄마를 사랑한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 수정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열심히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있습니다. 교회 학생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워십곡을 열심히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 멋진 무대를 올립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수정이의 손을 잡아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서울 미아리 집창촌 입구 ‘건강한 약국’ 약사. 하월곡동 한성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