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도 ‘카슈미르 분쟁’ 해빙 무드… 군인 등 140명 매몰된 시아첸 빙하지역 눈사태 계기
입력 2012-05-01 19:02
지상 최고(最高)의 눈 덮인 전선에도 해빙의 봄기운이 무르익을까.
지난달 7일 25m의 폭설로 군인 등 파키스탄인 140명이 매몰된 히말라야 시아첸 빙하 지역 최악의 눈사태를 계기로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에 화해의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포착되고 있다.
시아첸 빙하는 양국이 영토 분쟁을 벌이는 카슈미르 북부 해발 6700m에 있다. 길이가 75㎞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빙봉(氷峰)이 톱니처럼 날카로운 계곡빙하다. 이곳에 1984년부터 양국이 국경을 마주하고 부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군인들은 동상에 걸리기 일쑤고 고도가 높아 심장 통증에 시달리며 심지어 크레바스에 빠지거나 눈폭풍에 파묻히는 경우도 많다.
지난달 참사를 당한 곳은 시아첸 빙하 파키스탄 쪽 군부대였다. 사고 이후 불도저와 탐지견 등을 동원해 지금까지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아직까지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세기 가장 바보 같은 군사적 대치이자 핵으로 무장한 양국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히는 이 같은 행위를 종식시키자는 의견이 파키스탄 내부에서 일고 있다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먼저 야당 지도자 나와즈 샤리프가 불을 댕겼다. 그는 파키스탄이 일방적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발언은 인도와의 군사적 대결이 곧 애국으로 인식되는 파키스탄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 파키스탄 신문은 시아첸 빙하지역을 ‘평화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영자신문 ‘익스프레스 트리뷴’은 사설에서 “지구상 누구도 이처럼 높은 곳에서 군인들이 대치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면서 “파키스탄군이 내려온다고 해서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군부도 거들었다. 군부 실세 아샤파크 카야니 장군은 자원 개발과 경제 성장을 위해 인도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지역의 분쟁은 종식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파키스탄에 비해 인도는 다소 소극적이다. 2008년 뭄바이 테러에 연루된 파키스탄 군인들을 처벌하도록 요청했으나 파키스탄 정부가 여태껏 거절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참사 다음 날인 지난 8일, 파키스탄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과 인도 만모한 싱 총리가 만나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힌 만큼 관계 개선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2011년 파키스탄이 인도에 대해 통상 등에서 가장 큰 혜택을 주는 ‘최혜국(MFN)’ 지위를 부여한 이후 적대적이었던 양국 관계가 호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의 입장 변화가 기대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다만 양국이 현재 점진적인 교역 증대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만큼 ‘콕콕 찌르는 듯한’ 예민한 영토 분쟁을 현안의 핵심 의제로 삼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고 FT는 전했다.
정진영 기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