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순철 (3) 아버지 찾아 日 밀항… 그러나 야쿠자의 세계로

입력 2012-05-01 18:16


1년 넘게 서귀포 시내를 떠돌던 나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열서너 살 나이의 나에게 주어진 일은 어른들도 힘겨워 할 만한 것들이었다. 밭일에서부터 들에서 꼴베기, 오물통 지어나르기 등 닥치는 대로 해야만 했다. 똥지게를 지고 가다 자빠져 똥물로 목욕을 한 적도 있었다. 잠은 헛간에서 자고, 옷을 한 번 입으면 1년 내내 갈아입지 못했다. 식사 때도 항상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너무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허약해진 탓인지 밤이면 악몽에 시달렸고, 가끔 자다가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갈 데가 없었다.

그런 차에 구세주 같은 한 할머니를 만났다. 고구마 종자를 구입하려고 찾아온 할머니가 내 몰골을 보고는 너무 안쓰러웠던지 주인을 설득해 나를 데리고 나왔다. 그 할머니를 졸래졸래 따라가 보니 예전 친할머니와 살던 그 동네였다.

그 할머니와 두어 달 그럭저럭 지냈을까, 나는 생각지도 않게 일본으로 가게 됐다. 할머니가 일본에 있는 아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자 일본에 보내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내 상황을 찬찬히 알아본 그 할머니의 아들은 일본에 내 친아버지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1966년 늦가을로 기억된다. 나는 밀항선을 탔다. 부산 제3부두에서 광석을 싣고 가는 화물선의 물탱크 속에 숨어서 일본의 어딘가로 출발했다. 나처럼 몰래 일본으로 들어가는 사람 30여 명이 한 평 남짓한 물탱크 안에 뒤엉켜서 5일 동안 견뎌야 했다. 서로 밀치고 싸우면서 대소변도 그 속에서 해결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을 수없이 하는 동안 마침내 일본의 고베에 도착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온 몸이 피부병에 멍투성이였다. 배에서 내리자 건장한 체격의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다가 감정없이 “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했다. ‘저 사람이 정말로 내 아버지인가’ 싶었다. 그를 따라 교토의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서자 난리가 났다. 새어머니와 네 명의 아이들이 거지 차림의 나를 보자 질색을 하며 아버지를 향해 일본말로 악다구니를 해댔다. 결국 집에서는 대판 싸움이 벌어졌고, 나를 향해서도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 결국 나는 그 집에서 며칠도 못 지내고 나와야 했다.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나를 한 철공소로 데려가 맡겨놓고는 도망치듯 떠났다. 그곳에서 일하는 5명의 직원들은 내가 들어가는 날부터 온갖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센징 빠가야로’라는 말을 입에 달고서 수시로 발길질을 해대는가 하면 심심하면 담뱃불로 내 몸을 지졌다. 낯선 타국에서 도망도 갈 수 없는 처지의 서러운 삶이었다. 하기야 낳아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자식이 남들에게 무슨 대접을 받겠는가. 철공소에서도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작업 중 쇳조각이 눈에 튀면서 눈을 크게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자 엄청난 핍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당한 고초는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어느 날 나는 교토에서 오사카로 가는 밤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하야시 겜보라는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그를 찾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기어코 그를 만났는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는 야마구치파 야쿠자의 중간 보스였다. 자연스럽게, 아니 그의 꾐에 의해 나는 야쿠자의 일원이 됐다.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이는 정녕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 하는가.”(시 4:2)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