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송만능 세태와 전자소송제

입력 2012-05-01 18:21

소장(訴狀)을 비롯한 각종 서류를 법원 방문 없이 전자문서로 제출하고 송달받아 소송 당사자가 집이나 사무실에서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전자소송이 부쩍 늘었다. 민사 전자소송은 시행 첫 날인 지난해 5월 2일부터 3월말까지 모두 21만2927건이 접수돼 전체 민사 사건의 24.6%에 달했다. 인지액도 종이소송보다 10% 저렴하다.

전자소송이 편리하긴 하지만 우리 사회가 시급하게 고쳐야 할 고질병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리한 소송과 고소·고발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리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2010년의 경우 전국적으로 민사본안 사건 접수건수만 무려 98만여건에 달했다. 직전 해인 2009년에는 100만건을 넘었다. 본안 사건만 따져서 그렇지 각종 가처분·가압류와 가정법원의 소송 등을 합하면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단순한 채무불이행 사건도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에 사기죄로 고소하는 이른바 민사사건의 형사화가 관행처럼 굳어져있다.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고소부터 해 놓고 민사소송을 내는 방식이다. 국가 형벌권을 개인의 채권 추심에 이용하는 무분별한 행위다.

이런 일이 빈발하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유 없이 고소당한 사람들은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법원과 수사기관도 사회정의보다는 개인의 민원해결사로 전락하고 만다. 2009년 기준으로 전체 형사사건 중 고소사건 점유율이 27.35%로 일본의 57배에 이르고, 인구 10만 명당 피고소 인원은 1246명으로 일본의 171배나 된다.

무리한 소송과 고소·고발이 만연하는 것은 무엇보다 화합의 정신, 관용의 미덕, 승복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사분쟁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민·형사상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것이 문화처럼 굳어졌다. 따라서 전자소송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각종 소송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는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하다. 소송과 고소·고발이 없는 세상이 정말 아름다운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