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 ‘암 전문가’ 한만청 전 서울대 병원장 암 극복기

입력 2012-04-30 18:12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

전 서울대 병원장 한만청(79) 박사가 생존율 5%의 말기 암을 극복하고 이후 14년 동안 건강을 유지하며 왕성하게 사회 및 학술활동을 해 온 비결이자 국내 암 환자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다. 한 박사는 예순 나이를 훌쩍 넘긴 1998년, 간에서 발견된 암 덩이를 잘라낸 후 두 달 만에 그 암이 폐로 전이돼 생존율 5% 미만이라는 말기 폐암까지 이겨낸 암 전문가이다. 그는 ‘완치됐다’는 의료진의 판정을 받은 후에도 간과 방광에 각각 또다시 나타난 암을 자신만의 생활습관과 식이요법, 적절한 항암 치료를 통해 ‘기적적으로’ 물리친 ‘암 생존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암 극복기는 감동 그 자체일 뿐 아니라 ‘암 치료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 박사는 암 치료에 있어 ‘친구론’을 주장한다. 암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더 깊게 빠져드는 늪과 같아서 오히려 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친구로 삼아 잘 달래서 돌려보내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암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박사가 최근 새로 펴낸 책,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센추리원) 개정판에서 국내 암 환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암과 친구가 되는 5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1. 사귀기 전에 충분히 알자

암이 지독하고 끈질긴 놈이란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암은 그야말로 고약한 친구다. 그런 만큼 어떤 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지, 어떻게 달래면 성질이 가라앉는지, 친구로 끼고 살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환자 본인이 먼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비슷한 종류의 암이라고 해도 찾아오는 양상은 사람마다 달라서 어설픈 정보를 가지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가급적 암 전문가가 쓴 의학서적을 읽고, 이를 주치의와 대화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하나를 알 때마다 암이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카더라’ 식의 정보에는 차라리 귀를 막자.

2.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마라

현대의학은 어떤 상황이든 수치화하고, 규격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수치에 따라 나누고 분석하고 거기에 따른 대응책을 합당하게 마련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서류상 또는 검사상 수치가 환자들의 마음을 크게 좌지우지한다는 점이다. 엊그제는 정상이었는데, 며칠 있다가 다시 해보니 수치가 정상 범주를 벗어났다고 할 때 수치 자체에만 매달려 흥분하는 환자들이 많다. 나아가 단지 흥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말도 안 되는 비방(?)에 손을 대기도 한다.

실험은 사람을 속인다. 수치라는 것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여기에 흔들리면 우왕좌왕하게 되고 체력만 낭비한다. 암이란 놈은 상황에 따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걸 좋아한다. 함께 지내려면 무엇보다도 든든한 체력이 있어야 한다. 심신을 헛되이 소모하지 말자.

3. 잔수로 사귀지 마라

암과 지내는 것은 마라톤 레이스와 같다. 마라톤에는 지름길이라는 게 없다. 요행이라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달려야 할 뿐이다. 암을 친구처럼 끼고 살아야 하는 생활이 꼭 그렇다.

암 치료법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단번에 어떻게 해보려는 요령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잔수(잔머리)로 암을 대해선 안 된다. 그런 잔머리에 걸려들 만큼 암은 어수룩하지 않다. 암과의 싸움에선 있는 힘을 다해 한 걸음씩 정도(正道)를 걷는 자세가 필요하다.

4. 거리를 두고 차분히 사귀라

암이 위협적으로 다가오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자. 자신을 먼저 다진 후 암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암이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힐수록, 때론 위협적으로 덤빈다고 하더라도 ‘오냐. 네가 그렇게 나오는구나. 좋다. 그러나 나는 우선 나를 다진 후 너를 대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암은 내 약점을 이용하기 때문에 함부로 덤벼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이 한마디를 기억하자. ‘급할수록 돌아가라.’

5. 언젠가 돌려보낼 친구라고 여겨라

사람들이 암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암과 더불어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암과 더불어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마라. 암은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이지만 언젠가 되돌아갈 친구다. 그 이후를 생각해야 암도 ‘아, 이놈은 내가 오래 붙어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고 판단해 물러갈 준비를 한다. ‘벌써 내가 떠난 후의 삶도 생각하고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암이라는 고약한 친구를 끼고 살다가 마지막에 손 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희망을 잃지 말자.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