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대만 단교 20년
입력 2012-04-30 18:01
올해는 우리나라가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은 지 20년 되는 해다. 중국과 정식 외교 관계를 맺은 1992년 8월 당시 이상옥 외교장관이 진수치(金樹基) 주한 대만 대사에게 단교를 통보하면서 양국의 공식 관계는 끝났다. 너무 화가 난 대만은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정식 수교를 하루 앞둔 8월 23일 먼저 단교를 통보해 왔다고 한다. 적어도 겉으로는 쫓겨 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갑작스런 단교는 이후 두 나라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사전에 눈치를 주고 사후에도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 개인이나 국가간 도리일진대, 우리나라는 무관심했다. 미국이나 일본은 단교 후 정치적으론 거리를 뒀지만 경제, 문화 등 다른 분야 교류는 절대 소홀하지 않았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대만을 본 적도 없는 나라인 것처럼 홀대했다. 그 결과가 2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극적으로 드러났다. ‘대만의 김연아’로 불리는 태권도 선수 양수쥔(楊淑君)이 규정에 어긋난 전자호구 센서를 달아 반칙패 당하자 엉뚱하게도 우리나라에 거세게 항의한 것이다. 양의 반칙패가 라이벌인 중국의 우징위의 우승을 위해 한국 출신 경기 관계자들이 조작했다는 이유에서다.
양은 그 뒤 우리나라에 와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준 시계를 거절할 정도로 두 나라 사이는 정서적으로 먼 관계였다. 그러나 대만은 50년 동안 일본 식민통치를 받다가 해방된 후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로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안보와 경제도 미국에 의지하고 인구 2300만에 국민소득도 2만800달러로 국가경쟁력이나 국민행복지수는 오히려 우리보다 앞서 있다.
단교 중에도 우리 기업들의 노력으로 두 나라간 교역규모는 그 이전보다 증가해 1991년 12위(31억 달러)였던 것이 20년이 지난 지난해에는 6위(329억 달러)로 상승했다. 문제는 반도체처럼 두 나라간 경쟁이 심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일본과 연합해 한국에 대항하자는 연일항한(聯日抗韓)이라는 구호도 심심찮게 나온다고 한다.
마침 어제부터 김포와 타이베이 시내 쑹산(松山) 공항 사이를 매일 두 편의 셔틀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기존의 인천과 타이베이 남부 타오위안(桃園) 공항을 오가는 구간이 만성적 좌석 부족 현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인적교류가 활발해 질 것이다. 대만과의 거리를 더 좁힐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