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편지의 귀환

입력 2012-04-30 18:01


전쟁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독일작가 에리히 레마르크(1898∼1970)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1929)는 할리우드 영화감독 루이스 마일스톤에 의해 1930년 영화화됐다.

주인공인 학도지원병 파울 보이머가 개울가에서 애인의 편지를 읽다가 적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쓰러지면서 놓친 편지가 바람에 날려 개울가에 떨어진다. 손이 닿을 듯 말 듯하다. 낡고 구멍 뚫린 장갑 틈새로 삐져나온 손가락은 더욱 처절하다. 그는 의식을 잃어가고, 편지는 개울물을 타고 흘러갈 때 자막이 뜬다. “이날 사령부 보고서에는 ‘서부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자막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따온 것이지만 편지의 등장은 마일스톤 감독의 뛰어난 각색에 의해 탄생했다. 사실 편지는 소설 중간에 나온다. 포탄 구덩이에 몸을 숨긴 채 배고픔과 추위에 떨던 보이머가 느닷없이 구덩이에 들어온 적군(프랑스 병사)을 살해한 직후의 장면이다. “그의 아내는 지금 확실히 남편 생각을 할 것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다. 그는 아내에게 종종 편지를 보냈을 것 같은 얼굴이다. 내일이나 일주일 안에 그녀는 남편의 편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열린책들·홍성광 역)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고 있는 전선의 병사들을 위무하기엔 편지만 한 게 없을 것이다. 최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한국전 당시 북한 인민군들의 편지 뭉치가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라는 제목의 책자로 공개됐다. 미군이 평양에서 노획한 편지 뭉치는 두 개의 문서 상자에 들어 있었다. 책의 편저자인 워싱턴 인터내셔널 센터 이흥환 선임편집위원은 2년여에 걸친 탐사 끝에 색 바랜 1072통의 편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연필로 쓴 글자들은 60년 세월에 흐려질 만큼 흐려졌고, 펜글씨나 만년필 글씨의 잉크는 엷게 번져 희미해졌거나 아예 뭉그러진 상태였다. 미 국립문서보관소는 1977년 이 문서에 대한 비밀을 해제했지만 30년이 지나도록 관심을 갖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미군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편지들은 일찌감치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씨는 그 가운데 113통의 편지만을 간추려 공개한 게 아쉬운 나머지 편지들을 수취인에게 돌려주는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수취인의 대다수가 북한 주민이라는 점에서 편지의 주인을 찾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북·미수교가 이뤄진 다음이라면 어떻게든 전달 방법이 강구될 수 있겠지만 수교 이전엔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감성을 자극할 편지를 수령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웹사이트를 통한 편지의 공개가 강구되고 있다고 한다.

민간 차원에서 편지 사본을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편지 돌려주기 운동’을 펼친 뒤 미국 정부와 북한 당국의 반응을 지켜보자는 것이다. 편지의 주요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웹사이트에 올린다면 한국과 북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뜻밖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북·미 접촉 때에도 이 문제가 의제 중 하나로 거론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정부가 편지의 소유권을 민간에게 이양한다면 더욱 금상첨화일 것이다.

인민군은 우리의 적이지만 편지는 적이 아니다. 편지는 전쟁 그 자체도 아니다. 편지는 기록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리라. 60년이나 늦었지만 이 편지들이 수취인의 가족에게 직접 전달될 날을 기대해 본다. 그들이 편지를 받아 쥘 때 어떤 감흥을 받을지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