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홍제] 420년 전 임진왜란을 생각한다
입력 2012-04-30 18:01
올해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420년, 즉 7갑자가 되는 해이다. 지난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탄신한 날이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을 평정하고 눈을 외부로 돌리면서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주장했다. 명나라로 가는 길을 조선이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1592년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지휘하는 부대가 부산포에 침입했다. 왜적은 파죽지세로 충주를 거쳐 신립 장군의 배수진을 격파하고 한성으로 향했다.
5월 2일 한성 점령, 선조 몽진, 6월 14일 평양 점령, 6월 17일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부대가 함경도로 진군하는 등 2개월도 되지 않아 조선은 적에게 유린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전쟁은 7년여를 끌면서 조선의 민생과 국토를 황폐화시켰다. 조선 백성 600만명 중 300만명이 사망했고 농지의 60%가 손실됐다는 기록이 있다.
전쟁을 총책임지는 도제찰사직을 수행했던 서애 유성룡은 종전 후 낙향해 징비록을 기술했다. 이를 통해 국방을 소홀했던 지도자들의 실책과 후대에 귀감이 될 내용들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는 징비록에서 “전쟁은 사람을 죽이고 국토를 유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미래 기준이 될 과거까지 삼켜 버린다. 과거를 잊어버리면 반성도 할 수 없고, 혁신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임진왜란은 조선 개국 약 200년 뒤 발발했으며, 호란과 삼전도 굴복을 거쳐 종국에는 대한제국 멸망이라는 치욕의 역사로 이어졌다. 이런 역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밝혔다. 조선은 개국 후 평화가 지속되면서 국방을 소홀히 하고 지도자들은 집단 이기주의에 빠졌다. 이이의 10만 양병론은 채택되지 않았고, 동·서인으로 대변되는 극심한 갈등이 국정 난맥상을 드러냈다. 이런 것들이 조선을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조선은 자기반성의 미흡과 국제정세에 대한 혜안 부족, 지도자들의 문제로 인해 제국주의의 희생이 되고 말았다. 그 후 우리는 광복과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세계 190여 국가 중 10대 강국에 진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은둔의 나라’가 아니라 타고르가 노래한 ‘동방의 빛나는 등불’이 되고 있다. 바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임진왜란 발발 420주년을 맞은 현 시점에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 심화, 사회적 불신 만연, 자유무역협정(FTA) 문제 등으로 인해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가고 있다. 총선, 대선으로 국론이 분열될 위기에 놓여 있다. 특히 제주기지 건설 등 안보 문제에까지 극심한 대결양상을 보이고 있어 실로 우려스럽다. 선거를 통해 세대 갈등, 지역 갈등, 진보와 보수 갈등이 안보까지 흔들어 대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홍제(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