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그리스 ‘자살 도미노’ 충격… 70대 약사 이어 교사·학생·성직자도 잇달아 극단 선택

입력 2012-04-29 19:39

구제 금융과 긴축 재정 등의 여파가 그리스 국민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

실업률은 높아져 가는 가운데 연금 수령액은 크게 줄었고, 취업의 길은 까마득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6일 총선을 앞둔 그리스 정당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기 위해 긴축 재정 완화 등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28일(현지시간) 선거가 임박한 그리스에서는 요즘 자살 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4일 70대 약사가 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다 의회 앞 광장에서 긴축 재정에 항의하며 자살한 이후 그리스에서는 자살 도미노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주에도 38세의 지질교사가 재취업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23세의 학생, 심지어 35세의 성직자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거의 매일 자살 관련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그리스는 연간 자살 건수가 600건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자살률이 아주 낮은 나라였다.

우선 종교적으로 국교인 그리스정교회가 자살자에 대해서는 교회와 성직자가 장례를 주관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자살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가족이나 지인이 자살했을 경우 사고사로 위장할 만큼 사회적 분위기가 자살을 금기시하고 있다. 또 유럽 어느 국가보다 돈독한 가족간의 유대감과 온화한 기후 덕에 항상 밝고 사교적인 국민성 등이 자살률이 낮았던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통계를 보면 자살자가 2009년 10만명당 2.8명으로 전 세계 84위, 유럽 최하위였다.

그러나 2010년 상반기에는 무려 40%나 폭증했고, 지난해에는 10만명당 5명으로 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추정됐다. 증가율로 보면 유럽 1위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현재의 구제금융 사태 등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과 이에 따른 박탈감, 자신감 상실 등이 자살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정치적 자살’ 또는 ‘강요된 죽음’으로 표현했다. ‘긴축 정책의 위기가 전염병으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하는 전문가도 있다.

아테네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인 니코스 시데리스는 “위기의 방아쇠는 당겨졌다. 많은 그리스인들이 자존감의 상실, 굴욕감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이제 자살 예방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긴축 재정의 숨통을 트고 세금을 신설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국민들을 달래고 있다. 좌파인 신민당과 연정을 한 집권 사회당은 개혁보다는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최근의 여론조사결과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겨우 지킬 것으로 예상됐으나 현 경제 상황에 대한 민심이 워낙 나빠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정진영 기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