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흑인폭동 20년] 편견과 不通이 부른 충돌… 이젠 “우린 하나” 친구로
입력 2012-04-29 22:00
LA 흑인폭동 사태 20주년을 하루 앞둔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사우스센트럴 지역의 버몬트 가. 당시 폭동 피해가 가장 컸던 이곳의 모습은 ‘흑인 밀집거주지’일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과 크게 달랐다. 행인과 쇼핑객들의 다수는 히스패닉(남미계)이었다. 약탈이 처음 시작됐던 곳의 백인이 운영했던 슈퍼마켓은 멕시칸 식료품슈퍼마켓으로, 한인들이 많이 입점했던 잡화점체인도 대부분 히스패닉들로 운영자가 바뀌었다.
사태 당시 미주크리스천헤럴드 주필로 사태를 보도하고 이후 ‘4·29 폭동 백서’를 집필했던 이선주(78) 목사는 “폭동 당시 흑인들이 전 주민의 80%정도였던 사우스센트럴 지역에서 지금은 히스패닉의 비율이 60%를 훨씬 넘는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주민의 주축은 히스패닉으로 바뀌었지만 한인들은 주류판매업, 미용업, 세탁업 등을 중심으로 이 지역에서 상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사우스센트럴 지역에서 주류판매점을 운영하다 큰 피해를 입은 박종태(64)씨가 그때 상황을 생생히 들려줬다. 1992년 3월 29일 자정 무렵 LA근교 자택에 있던 박씨는 종업원이 건 전화에 황급히 차를 몰고 나섰다. 흑인과 히스패닉계 등이 인근의 대형 할인마트를 털고 있으며, 곧 이쪽으로 몰려올 것 같다는 얘기였다.
1시간 걸려 가게 근처에 도착한 그는 폭도들이 차를 주차해 놓고 자신의 가게에 있던 고급 술을 박스째 실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경찰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아주 위험하다”며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몇 시간 새 박씨가 피땀 흘려 마련한 주류판매점 2곳이 잿더미가 됐다.
하지만 그는 흑인사회의 생활관습과 문화에 대한 한인들의 인식 부족도 사태의 한 원인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주 한미식품상협회 등 한인 상인 단체들은 이후 10여년간 각 회원들이 영업하는 지역의 흑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학습용품을 기증하는 등 상호이해와 화합 노력을 계속해 왔다.
박씨는 “당시 장학금을 받았던 흑인 학생들이 성인이 돼서 고맙다고 찾아오곤 한다”며 “이제는 흑인 사회에서 한인들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 목사도 사태가 그렇게 악화된 데는 다민족·인종 사회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고 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한인들의 잘못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서부 비벌리힐스 등 백인 부유층 주거지의 길목에 한인타운이 있다보니 한인이 크게 당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것만으로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뇌리 속에서도 폭동의 기억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통합교육청은 학교에서 LA 폭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주 교육부는 교과 과정에 LA 폭동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았다.
폭동 사태 20주년을 맞아 잇따르는 기념행사에도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흑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여기며, 히스패닉들도 폭동 사태에서 약탈자로 부각되는 데 대해 매우 민감해하는 것.
이 목사는 “사태 20주년을 맞아 어린 세대를 교육하고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지만 자칫 한인들이 피해자라는 입장을 너무 강조하면 갈등을 키울 수도 있다는 데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LA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리피스 공원에서 열린 걷기대회와 공원 청소 행사에도 이런 측면이 엿보였다. 한인이 주축이 된 봉사단체 파바월드는 당초 다른 인종들도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를 예정했지만, 이날 참가자 대부분은 중고교 학생을 중심으로 한 한인들이었다.
파바월드 강태흥 회장은 “기억은 상기시키지 않으면 망각된다”며 “젊은 세대에게 사태의 전말을 알리고 평화와 인종화합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흑인인 허브 웰슨 LA시의회 의장은 “이런 사태가 다시 없겠지만, 만약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면 한인들을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LA 흑인폭동 사건은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로스앤젤레스(LA)에서 일어난 흑인폭동 사건으로, LA 역사상 최대 폭력 사태다. 4월 29일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구타한 4명의 백인 경찰관이 무죄판결을 받자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폭력과 방화, 약탈, 살인을 자행했다. 특히 흑인 주거지와 비벌리힐스 등 백인 부유층의 거주지 중간에 있던 한인타운이 주요 공격 대상이 됐다. 교포 이재성(당시 18세)씨가 흑인들의 총격에 희생됐다. 흑인 거주지 사우스센트럴 지역을 중심으로 피해를 본 업소 1만여개 가운데 한인업소가 2800여개였고 총 피해액은 7억2000만 달러에 달했다. 55명이 사망하고 2383명이 부상했으며 1만3379명이 체포됐다.
로스앤젤레스(LA)=배병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