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향우회

입력 2012-04-29 18:24

대통령의 멘토, ‘영포대군’의 친구에 이어 자신도 ‘방통대군’으로 불렸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함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곳이 ‘재경구룡포향우회’다. 최 전 위원장과 그에게 돈을 건넨 브로커 이동율씨가 이곳에서 함께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역주의의 질긴 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향우회는 오랜 농경사회의 흔적이다. 산업화 이후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향우회가 번창했다. 고향을 떠나온 동향끼리 외로움을 달래고 친분을 다지기 위해 만들어졌다. 봄 가을에 한강변이나 어린이대공원 같은 곳에 가면 ‘○○○향우회’를 적은 플래카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같은 고향 사람들이 비슷한 사투리를 쓰는 가운데 윷놀이나 족구대회 등을 하면서 향수를 달랜다.

향우회의 단위는 다양하다. 호남이나 영남, 충청과 같은 지역문화권 전체를 내건 이름부터 리(里) 단위까지 있다. 국경 넘어 미국 LA에도, 중국 베이징에도 고향 이름을 건 향우회가 있다. 그 많은 향우회의 공통점은 시골 지역을 근거로 삼는다는 점이다. 외지인이 많은 울산에 호남향우회는 있어도 영등포향우회는 없다.

조직력으로 따지면 시·군 향우회의 힘이 세다. 그 지역의 고등학교 동문회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단체장이나 국회의원 출마를 염두에 둔 사람들이 이곳에서 세를 규합하고, 사전 득표활동의 무대로 활용한다. 서울에서 향우회를 하면 그 지역의 시장이나 군수가 상경해 고개를 숙인다. 고향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거나 장학회를 만들기도 한다.

읍·면 단위는 결속력이 강하다. 유년 시절에 대한 공감의 폭이 크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물론 친인척으로 연결된다. 최 전 위원장도 이명박 정권을 창출한 후인 2008년 5월 재경향우회에서 축사를 했고, 그해 8월 구룡포에서 열린 총동창회에도 참석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한미한 어촌에서 태어나 서울대에 진학했고, 쌍용그룹 집안에서 가정교사를 하는 등 어려움을 딛고 입신양명한 그의 고향 사랑 또한 남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향우회도 지나치면 탈이다. ‘재경 구룡포읍 향우회’의 회칙 5조를 보니 이렇게 적혀 있다. “본회의 명예와 품위를 손상한 회원은 이사회의 의결에 따라 회원의 자격을 상실한다.” 향우회가 ‘구룡포가 낳은 최고 인물’ 최 전 위원장과 현직 부회장인 이동율에 대해 어떤 제재를 내릴 수 있을까. 짐작건대 “힘내라”며 위로할 것이다. 그런 곳이 향우회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