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엄마와 함께 춤을

입력 2012-04-29 18:26


“얘, 세느강 정말 별 거 아니더라, 한강이 더 멋져. 호호.” 올해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얼마 전 갔다 온 프랑스 얘기를 꺼내신다.

홀로 사시는 어머니가 요즘 전화를 하실 때는 TV 여행 프로를 보고 나서다. 어머니가 이미 다녀온 곳을 방영할 때는 당신이 본 느낌과 비교하고, 안 가본 데는 “얘, 돈 들여 가면 뭐하니? 정말 가본 것과 똑같네” 하신다.

환갑 지난 오빠가 팔순 어머니를 모시고 얼마 전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어머니가 평소 귀가 아프게 들어온 바티칸 성당, 센강, 알프스 등을 실은 얼마나 궁금해 하시는지 알기 때문이다. 긴 여행에 어머니 건강이 염려됐지만 여행지에서 어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쌩쌩’하셨단다. “그 바쁜 아들, ‘며느리의 남편’을 열흘간 고스란히 독차지 하다니 복도 많수.” 어머니 친구들이 그러셨단다. 그 덕분인지 어머니 목소리도 한 옥타브 높아졌고 말씀도 많아졌다.

그 전까지 어머니의 전화는 한결같았다. “얘 밥 뭐 해 먹었니? 무장아찌는 멸치액젓을 넣으면 맛있어.” 그런 거였다. 난 속으로 “매일 먹는 밥이 뭐 별거라고…” 하면서 “알았어요, 알았어” 이런 식으로 응대하곤 했다. 일생 직장에 매여 산 내게 그런 얘기는 그저 따분한 잔소리 정도로 들릴 뿐이었다.

가끔 아차 싶어 전화를 걸면 어머니는 통화 중일 때가 많다. 어떤 때는 한 시간이나 통화음이 들린다. 도대체 누구와 무슨 얘기를 그리 오래 하시는 걸까. “응, 그냥….” 엄마는 나중에 그렇게 흘려 넘기신다. 그 긴 통화음이 어머니의 외로움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과히 오래지 않다. 나 역시 이제 만만치 않은 나이가 되어서일까.

문득 “어머니와 아침 식탁에 앉으면 ‘너 많이 먹어라’ ‘아니 어머니가 많이 드셔야죠’ 하면서 그릇을 서로의 앞으로 밀어놓는 것이 대화의 전부”라고 한 기업인의 말이 떠오른다. 평생 사업에 쫓겨 온 그 대기업 회장이 노모께 사업얘기를 들려드릴 수도 없고 딱히 할 얘기도 없어 결국 어머니를 우울하게 한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후 그 할머님이, 오래전 작고한 자신의 어머니를 나지막이 부르며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는 얘기는 지금 생각해도 코끝이 찡해온다. 나는 항상 “엄마가 거길 힘들어 가시겠어?” “돈 많이 든다고 싫어하실 걸” 이런 생각으로 자연스레 어머니를 소외시키지 않았던가.

연례행사인 가족 모임에서도 다른 화제에 밀려 어머니는 말없이 수저를 드실 뿐이다. “외로움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그 어느 것도 내 외로움을 대신해 줄 것이 없으니 그렇게 견뎌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선 이 봄, 푸르름 가득한 수목원 여행이라도 어머니와 함께 가야지. 또 어머니가 보는 TV프로라도 열심히 봐두어야겠다. 그리고 전화를 하실 때 일단 목소리를 잔뜩 높여 수다스러워져야지. 아침 운동도 하시게 백화점 문화센터 춤반이라도 같이 등록해야지.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