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이석] 복지 공동구매론의 착각

입력 2012-04-29 18:23


장하준 교수를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보편적 복지를 시장 공동구매에 비유하고, 이것이 값싸게 복지를 구매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그럴 듯하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무엇을 생산하는 주체가 아니므로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라 세금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공동으로 구매한다. 맞다. 그러나 공동구매라는 비유의 적합성은 여기까지다.

이 비유를 확장해서 세금을 재원으로 공동구매하면 같은 품질의 재화나 서비스를 더 싸게, 혹은 같은 값에 더 질 좋은 재화나 서비스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구매는 정부가 공동구매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공동구매를 한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자기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꺼내 낮아진 값을 지불할 때와 일단 돈을 내고 난 다음 그것을 무상으로 얻을 수 있게 했을 때 각자의 행동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인터넷 등에서 공동구매를 통해 특정 제품을 시중보다 더 값싸게 구입하기 위해 개인들을 모집하는 일은 이제 별로 낯설지 않다. 인터넷의 발달로 이런 공동구매를 위한 결사에 드는 비용이 격감했기 때문이다. 한 번에 1개를 팔든 100개를 팔든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있기에 대량주문은 개당 가격을 낮춘다.

10만원을 송금하든 100만원을 송금하든 송금수수료가 건당 계산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동구매자들의 모집에 많은 비용이 들 때 판매자들이 간접적으로 소비자들을 대신해서 공동구매를 하기도 한다. 엄청나게 많은 재화들을 한꺼번에 싸게 구매한 다음 이 재화들을 ‘높이 쌓아놓고 싸게 파는(pile-high sell-low)’ 공급자의 전략이다.

그러나 시장 공동구매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장에서는 자발적으로 공동구매한 재화를 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세금을 재원으로 ‘무상’급식을 ‘공동구매’ 하면 우유를 버리는 아이들이 나타난다. 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동구매는 개인의 개별적 필요를 반영할 수 없다. 좋은 식품을 아이들에게 공동구매하자고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품이 좋은지, 어떤 비율로 얼마만큼 공급할 것인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래서 우유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우유가 공급된다.

복지를 공동구매하면 개인은 세금을 낸 이후이므로 따로 쌈짓돈을 내서 지불하지 않기에 그 재화를 과소비한다. 회식비를 공동 부담하면 각자가 자기 먹은 음식비를 지불할 때보다 보통 더 비싼 것을 주문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실제로 세금으로 부담하고 있지만 다시 쌈짓돈이 나가지 않으므로 실제 가치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재화가 공급되더라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우유를 버릴 수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건강보험료를 내고 난 다음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1만원을 냈을 경우, 실제로는 건강보험료까지 고려하면 5만원을 냈는데도 그 진료의 가치가 3만원에 불과하더라도 싸게 느낀다. 이는 의료를 공동구매하면 의료 과소비가 조장되고 공급자들이 소비자들의 필요에 별로 반응할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는 의료를 무상으로 공급했더니 치료를 제때 제대로 받기 위해 의사들에게 별도로 사례를 해야 했다. 세금이 들어가는 교육에서 교사들에게 촌지를 주는 관행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보편적 복지가 시장의 공동구매처럼 더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얻게 해줄까. 부적절한 비유가 빚어낸 착각이 아닐까.

김이석 시장경제제도硏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