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예정하심’, 그 황송한 진리에 빠지다

입력 2012-04-29 18:22


기독교의 진리 가운데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진리 중에 하나는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선택하시고 예정하셨다는 것을 듣게 되면 거부감을 가진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여 때로는 열을 낸다.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을 해 보자. 만약 인간이 처한 형편과 처지를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알게 된다면, 그때에도 과연 사람은 열을 낼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요’ 이다. 인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붉은 바다거북이의 운명을 아는가? 이들은 한 번에 수 백 개 정도의 알을 해변가 모래 밑에 낳는데, 문제는 이 가운데 살아남는 것이 거의 희박하다는 사실이다. 알에서 깨어나 고향인 바다까지의 짧은 거리를 무사히 기어가서 살아남는 것이 몇 마리나 될까? 수 백 개의 알 중에서 평균 1마리 정도라고 한다. 알을 좋아하는 짐승들이 태어나지도 않은 알을 가져가고, 또 천신만고 끝에 알에서 태어났다손 치더라도 다른 짐승의 먹이가 된다. 결국 수 백 개의 알 중에서 딱 한 마리가 생존하고, 이 한 마리가 100년을 산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생존한 새끼 거북이를 얻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있을까? 아니다. 깨어나지 않은 알부터 지켜야 한다. 깨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미 작심을 하고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심대로 한시도 눈을 떼어서는 안 된다. 알에서 깨어난 후에도 처음 예정하고 결심한 대로 눈동자처럼 따라다녀야 한다. 그래야 결국 생존하는 새끼 거북이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질문을 해 보자.

인간은 어떠한가? 새끼 거북이는 그래도 수백 분의 일의 생존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인간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서 미리 예정하거나 결심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두면 되는 것인가? 천만에! 자연인으로 태어나서 자기 힘으로, 지옥가지 않고 천국에 입성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제로 퍼센트다. 성경은 이것을 말한다. 모든 인간은 허물과 죄로 이미 죽었다. 이것이 인간 형편이다. 바다거북이보다 가능성이 더욱더 희박하다. 아니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가? 태어나기도 전에 결심하는 것이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를 선택하고 예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일인가? 아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가망성이 전혀 없다.

물론 인간 편에서는 누가 예정되어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비로소 철이 들어서 깨닫는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만세 전부터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이 진정으로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이 아니면 인간은 가망성이 없었다. 이것이 예정이다. 그래서 예정 진리는 항상 찬양과 함께 등장한다. 바울이 찬양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시절에 꽃잔치가 한창이다. 이 아름다운 시절에 봄의 정취에만 빠질 것이 아니라, 신비한 진리의 정취에 푹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