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잃어버린 10년’ 경보음 요란… 가계·기업 대출수요 급감

입력 2012-04-26 19:13


유럽이 일본식 잃어버린 10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대출 수요가 급감하는 등 1990년대 일본의 10년 장기 불황과 비슷한 현상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유럽 경제의 주춧돌 격인 영국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해 이런 전망에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돈 안 쓰는 유럽인…10년 불황 일본 판박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채무위기로 휘청거리던 유럽은행들은 연초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1조 유로에 달하는 거액의 유동성을 저리로 융자받았다. 은행 금고가 채워졌음에도 불구하고 1분기 가계와 기업의 대출 수요가 직전 분기에 비해 급감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ECB가 25일 밝혔다. 포르투갈의 주택 대출 수요가 70% 하락한 것을 비롯해 이탈리아가 44%, 네덜란드가 42% 줄었다. 이탈리아에선 기업 대출 수요도 38% 감소했다.

유로존 미래에 대한 불안감 탓에 가계는 소비에 나서지 않고, 기업은 공장을 짓거나 장비를 사는 등의 투자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ECB도 “감소 폭이 예상보다 크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대출 수요가 얼어붙은 현상은 과거 제로금리 등 정부의 온갖 유인책에도 국민들이 돈쓰기를 꺼리면서 10년 장기 불황에 시달렸던 일본을 연상시킨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5일 보도했다.

◇영국도 더블딥에 빠졌나…진화 나선 ECB=공교롭게도 같은 날, 영국국가통계국(ONS)은 자국의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0.3% 하락한 데 이어 1분기에도 0.2%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영국의 성장률이 2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감에 따라 유럽경제의 버팀목 영국에서 더블딥(경제가 살아나려다가 재차 후퇴하는 것)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ONS는 이로써 영국 경제 규모는 2007년 금융위기 이전보다 4.3% 수축하게 됐다고 밝혔다.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 미셸 산더스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이 2차대전 시기를 제외하면 지난 100년을 통틀어 최악의 경기 회복 사이클을 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 경제와 관련 경고등이 곳곳에서 켜지면서 ECB도 다급해졌다. 유로존 위기 해법으로 제시된 긴축 정책에 대한 반감과 함께 경제 회복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총재는 “유럽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하는 한편, 각국 정부에 기존 긴축정책을 고수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성장 협약(growth compact)’을 주창하고 나섰다. ECB 총재가 성장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