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복·이황 문집서 고가구·토기까지… 문화재 3500여점 밀반출 24명 적발
입력 2012-04-26 19:18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6일 조선시대 고서적 등 문화재 3589점을 일반화물로 포장해 해외로 몰래 빼돌린 혐의(문화재보호법상 무허가 일반동산문화재 반출)로 24명을 검거해 유모(52)씨 등 22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중국인 장모(57)씨 등 2명을 기소중지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중국과 일본으로 밀반출한 문화재는 감정가가 2억원이 넘는다. 경찰은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 중 조선 정조 때 발간된 성리학 서적 ‘동이고’ 등 74점을 회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 등은 2009년 4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경매를 통해 사거나 인터넷사이트에서 매입한 고서적 3486점을 일반서적 사이에 끼우는 수법으로 중국에 129차례 밀반출한 혐의다. 유씨는 중국에 사는 친척 최모(41)씨의 주문에 따라 문화재 목록에 오른 고서적을 구해 2년6개월여 동안 인천공항국제택배(EMS)를 통해 보내고 대가로 2000여만원을 받았다.
이모(60)씨 등 20명은 2005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서울 동대문과 중구의 문화재 매매업소에서 반닫이 등 목공예품과 토기 등 100여점을 사들인 뒤 가구로 위장해 부산항에서 국제화물로 27차례 일본과 중국 등에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인 여행객 장모(57)씨 등 2명은 지난해 12월 서울 인사동에서 구입한 조선중기 과거시험 답안지 2점과 백일장 답안지 1점을 가방에 숨겨 중국으로 가져가려다 인천공항 검색요원에게 적발됐다. 유출·회수된 문화재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것은 아니어서 국내 거래는 가능하다. 하지만 문화재청장 허가 없이 외국으로 보낼 경우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밀반출된 문화재 중 조선 정조 때 규장각에서 간행된 ‘어정주서백선’(1794) 목판본은 매우 정교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중기 문신 이항복의 문집 ‘노사령언’(1673)과 하홍도의 ‘겸재선생문집’(1666), 퇴계 이황의 ‘퇴도선생자성록’(1585) 등도 중앙·지방 관서의 생생한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문화재로 평가된다.
경찰 관계자는 “항만의 화물 심사와 통관은 서류심사 및 관세사의 서명으로만 이뤄지고 공항의 엑스레이 검색대도 고서적 밀반출을 적발하기에는 허술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더 이상의 유출을 막기 위한 개선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