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가 어린 생명을 훔쳐 팔다니… 병원서 아기 훔쳐 돈 받고 불법입양

입력 2012-04-26 22:05

지난 12일 스페인 마드리드 법원. 감청색 수녀복을 입은 87세의 노수녀가 청사 안으로 들어섰다. 경찰 호송을 받는 그녀 주위로 수십명의 기자들이 몰렸다. 잠시 후 법정을 빠져나온 그녀를 시민들은 조롱했고 야유를 퍼부었다. 지난해부터 스페인 전역을 들썩이게 만든 이른바 ‘영아불법입양’ 사건의 첫 단추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수녀의 이름은 마리아 고메즈. ‘애덕회(Sisters of Charity)’ 소속인 그녀는 1982년 병원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훔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입양시킨 혐의로 이날 소환됐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진술거부권을 내세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소환 다음날 그녀는 성명을 통해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CNN 인터넷판이 26일(현지시간) 게재한 기사에 따르면 스페인은 수십년 동안 아기를 훔쳐 돈을 받고 불법으로 입양시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공식적으로는 2000여건으로 알려져 있지만 수만건 심지어 30여만건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다. 그 중심에 가톨릭 교회가 있으며 수녀들이 추악한 사건의 핵심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국교가 가톨릭인 스페인 국민들은 경악했다.

스페인의 영아 불법 입양은 1939년 프랑코 독재정권이 들어선 직후부터 자행됐다. 초기에는 주로 반체제 인사들의 영아를 훔쳐 다른 가정에 입양시켰다. 75년 프랑코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는 가톨릭교회 산하 병원을 중심으로 신부와 수녀 의사 간호사들이 만행을 저질렀다. 생모들에게는 영아가 사망했다고 둘러댔고 시신은 볼 수 없다고 윽박질렀다.

후안 모레노와 안토니오 바로소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직업과 재산 규모, 관심사도 다른 두 집안이 여름휴가만은 항상 같이 다녔다. 수십년이 흘러 그들이 40대가 됐을 때 임종이 임박한 모레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여름휴가’의 진실을 털어놨다. 두 사람 모두 가톨릭 수녀들로부터 불법 입양했고 그 대가로 매달 할부금을 내왔다는 것이다. 그 액수가 노동자인 자신의 수입 2배나 됐다는 사실도 밝혔다.

“아버지는 단지 아들과 딸 중 하나를 고르면 됐다고 해요. 그러면 그들은 심드렁하게 아기를 건네줬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아기시장인 셈이지요.”

진실을 접한 이들은 어린이실종협회인 ‘아나디르’를 만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발족 직후 수백건의 문의가 이어졌다. 핏줄을 찾은 사례가 아직 많지 않지만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등 꾸준히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경찰 수사를 받은 사람은 현재까지 고메즈 수녀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녀마저도 사건의 전모 파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무 오래전 사건이라 사실 관계를 입증할 수 없어 기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스페인 정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국가적 불행은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CNN은 전했다.

정진영 기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