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위원회 50주년’ 감사패 받는 임동권 중앙대 명예교수… 강강술래 등 문화재 지정·연구 큰 업적
입력 2012-04-26 21:54
1962년 4월 30일, 유형·무형·천연기념물 3개 분과 17명의 위원이 회의를 열었다. 문화재위원회의 첫 출발이었다. 그로부터 5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9개 분과 80명의 위원이 활동 중이다. 문화재청은 30일 서울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문화재위원회 50주년 기념식’을 갖고 위원회 활동을 10차례 이상, 20년 이상 역임한 전·현직 위원 15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최고령자로 35년간(1966∼99, 2007∼2009) 17차례 위원을 지낸 임동권(86·사진) 중앙대 명예교수의 감회는 남다르다. 1세대 민속학자인 그는 1966년 강강술래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앞장섰다. 2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는 “당시 제가 최연소 문화재위원이었는데, ‘동네 여자들이 8월 보름날 손잡고 노는 것이 무슨 문화재냐’라는 선배 위원들의 반대가 쏟아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느 민족이든 달밤이 되면 모여서 축제를 벌이지만 외국에선 노래가 정리돼 있지 않은 데 반해 우리나라는 노래가 제대로 기록돼 있다”며 위원들을 줄기차게 설득했다고 한다. 6개월의 설득 끝에 강강술래는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인받았다. 그리고 반세기가 흐른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강릉단오제의 국내 무형문화재 지정(1967년)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2005년)도 그의 연구와 집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1970년대 썰물처럼 사라져가는 민속 문화를 기록하고 학문으로 승화시킨 주역이었다. 당시 그에게 가장 큰 적은 새마을운동이었다. ‘새마을 노래’의 “초가집도 없애고”라는 구절 때문에 전통이 많이 사라진 것이 안타까웠다고.
문화재위원을 지내는 동안 인간문화재 대상을 찾아 전국 곳곳을 다니기도 했다. 그는 “민속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우리 민족이 대대로 그 속에서 살아왔으니 소재 발굴과 함께 한민족 생활사를 부각시키는 학문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와 함께 이번에 감사패를 받는 사람은 원병오 안휘준 이두현 전상운 정양모 김훈수 등 생존 위원과 예용해 김원룡 성경린 진홍섭 이창복 임창순 황수영 최영희 등 작고 위원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