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마 25:36)
입력 2012-04-26 18:44
기원후 587년 이집트에서 발행된 파피루스 영수증이 남아 있다. 영수증의 내력을 설명하면 이러하다. 이집트에 살던 아피온(Apion)이라는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아피온의 가문은 이집트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였기에 콘스탄티노플 황실에서 황제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인물이 나오기도 했다. 아피온은 578년경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을 남겼는데 아마도 그 유언의 일부에 해마다 병원에 헌물을 드리라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아피온의 상속자들은 유언을 받들어 상당량의 밀을 매년 여러 병원에 헌물했는 데, 관계된 대부분의 영수증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한 장 보존돼 있는 것이 587년에 발행된 영수증이다. 아피온의 상속자들은 그 해에 엘리아라는 이름의 수도자가 설립해 운영하던 ‘거룩한 병원’에 대략 15t의 밀을 헌물하였고, 병원측으로부터 헌물에 대한 영수증을 받았다. 이집트 신앙인들의 지극한 신심을 증언하는 이 영수증은 서양학자들에 의해 ‘옥시린코스 파피루스 16권 1898번’으로 편집되어 있다.
본래 로마제국에는 병원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수 천 수 만 노예들의 노동을 통해 운영되던 대규모 농장에 병든 노예들을 치료하던 곳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곳이 아니라 노동력의 질을 보존하기 위해 대지주가 설립한 폐쇄적 치료공간에 불과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교 신전중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커다란 인기를 누리곤 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본래 그리스의 명의였는데 죽은 후 신격화돼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생겨났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는 치료를 원하는 병자들이 많이 찾아왔고 신전의 부속건물 중에는 환자들의 숙소와 치료용 온탕(흔히 온천탕)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곳은 어디까지나 신전이었지 병원은 아니었다.
4세기가 되어 기독교인들, 특히 수도자들이 중심이 돼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안식처를 만들기 시작한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 당시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말씀 한구절 한구절을 복음으로 받들었다. 이들이 특히 마음에 담았던 것이 바로 “너희는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라는 마태복음 25장 36절의 말씀이다. 헐벗고 병든 자를 돌아보면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돌본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씀은, 당시의 세상을 뒤흔든 새로운 기쁜 소식(복음)이었다. 수도자들은 병든 자들을 위해 특별한 장소를 마련해 ‘노소코메이온’(nosokomeion)이라 칭했다. ‘노소’(noso)는 병든 자라는 뜻이고 ‘코메이온’(komeion)은 쉼터라는 뜻으로, 합하면 아픈 자의 쉼터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4세기에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된 병원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5세기 말엽부터는 로마제국의 법을 통해 법인(法人)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6세기엔 웬만한 교회나 수도원이 있는 곳이면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병원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기독교 기관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영성(靈性)’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새 새 것을 만들어 놓는 문명의 핵이다. 병원을 잉태하고야 마는 영성처럼 말이다. 영성이 치졸하면 그 사회도 치졸할 것이고 영성이 고상하면 그 사회도 고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담았던 시대치고 새롭게 변하지 않은 시대가 없다. 말씀은 영성에 양분을 공급하고, 영성은 산고(産苦)의 고통을 통해 새로운 제도를 잉태하고야 만다. 인류문명이 진보했다면 영적인 힘이 끊임없이 자유와 평등과 사랑의 정신을 제도로서 만들어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567년 3월 31일 플라비오스 테오도로스라는 사람이 이집트의 장관 사무실에서 작성한 파피루스 유언장이 남아 있다. 그 유언장을 따르면 테오도로스는 이집트 각처에 흩어져 있던 많은 부동산을 수도원에 기증하면서 ‘경건한 사업’ 즉,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자들을 도와주는 사회 복지사업에 사용할 것을 명시한다.
이집트의 신앙인들이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마 25:36)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담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마음에 담는 그 말씀으로부터 흘러나올 것이다.
(한영신학대 교수·캐나다 몬트리올대 초청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