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서 노인까지 세월을 넘나드는 박해일의 변신연기… 영화 ‘은교’에서 파격적 모습 화제

입력 2012-04-26 21:52


26일 개봉된 영화 ‘은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화제를 모았다. 박범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것, ‘해피엔드’(1999) 이후 주춤한 상태에 있는 정지우 감독의 야심작이라는 것, 17세 여고생 은교 역할에 21세 신예 김고은이 캐스팅됐다는 것, 그리고 배우 박해일(35)이 20대 청년, 50대 대학교수, 70대 노인을 오가며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는 것 등이다.

관람객들도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감상하지 않을까 싶다. 원작자가 영화를 보고 비교적 호평을 했으니 원작의 메시지를 어느 정도 전달하는 것에는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해피엔드’의 로맨스와 스릴을 떠올리며 정 감독의 연출력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세태가 바뀌었는데도 ‘은교’는 예전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교를 연기한 김고은은 풋풋한 캐릭터를 선사하지만 ‘해피엔드’의 여주인공 전도연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다만 박해일의 변신에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박해일은 멀어져 가는 젊음을 아쉬워하며 17세 소녀에게서 매혹을 느끼고, 제자의 혈기를 질투하는 복잡다단한 70대 노인의 심리를 연기한다. 그는 지난해 가을과 겨울, 원로시인 이적요로 살았다.

8시간이 넘는 특수 분장이야 꿈쩍도 않고 견뎌냈지만 정작 그가 풀어야 할 과제는 노인 목소리와 감정표현이었다. 영화 초반 박해일의 목소리는 다분히 어색하게 들린다. 억지로 내는 노인 목소리라고나 할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원숙해지면서 보는 이들을 자신에게로 빠져들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10년 넘게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갈고닦은 연기력 덕분이다.

몸은 늙었지만 욕망은 식지 않은 노인의 감정표현은 서울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의 눈빛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젊은 여자가 지나가면 모두 그쪽으로 눈길을 주더라”는 것. 늙는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것이며 청춘이 얼마나 소중한지, 노인들에게도 사그라지지 않은 내면의 청춘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는 그의 도전이 얼마나 어필할지 두고 볼 일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