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는 시장의 모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입력 2012-04-26 18:32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와이즈베리
영국항공은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는 승객들이 여권과 입국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설 필요가 없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항공사는 일반석 승객에게 ‘맞춤 서비스’를 판매해서 새치기 자격을 누리게 한 것이다. 미국의 유나이티드 항공사는 덴버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승객이 39달러를 추가로 지불하면 보안검색대 통과와 탑승에 우선권을 준다. 역시 새치기 권리를 판매한 것이다.
새치기 권리 판매는 놀이공원에서도 일어나며 병원 진료 예약권에서도 일어난다. 사람을 고용해 대리로 줄을 세우거나 암표를 파는 행위는 지구촌에서 비일비재하다. 줄서기에 관해 시장을 옹호하는 입장에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첫 번째는 자유지상주의자의 입장이다. 그들은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한 원하는 재화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공리주의자의 주장이다. 그들은 시장에서의 거래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똑같이 이익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집단의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을 향상시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설득력이 없다는 게 미국 하버드대 철학교수 마이클 샌델의 의견이다. 시장 가격에는 자발적으로 지불하려는 마음만큼이나 지불할 수 있는 능력도 반영되기 때문으로, 예컨대 야구장의 비싼 관람석에 앉았다가 일찍 자리를 뜨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것이다. 홈 플레이트 바로 뒤 관람석에 앉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은 경기를 향한 열정보다는 주머니 사정과 관계가 깊을 수 있다. 오히려 박스 관람석에 앉을 만한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선발출전선수들의 평균 타율을 전부 꿰고 있는 팬들, 특히 젊은 팬들이 그들보다 야구를 좋아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시장 가격은 자발적으로 가격을 지불하려는 마음뿐만 아니라 능력도 반영하므로, 누가 특정 재화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인지 가려내기에는 불완전한 지표라는 것이다.
과연 시장은 언제나 옳은가? 그는 “아니다”라고 한다. 오히려 “시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시장 거래가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그리고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하고 변질시킨다면 효율성이란 이름 아래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까지 사고파는 시장의 무한한 확장에 속절없이 당할 것이 아니라 공적 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