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희생양 영친왕의 내면을 캐다…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

입력 2012-04-26 18:31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송우혜/푸른역사

영친왕 이은(李垠)의 생애와 대한제국 황실의 이야기를 다룬 ‘마지막 황태자’ 시리즈의 최종 편. 2010년 12월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 ‘왕세자 혼혈결혼의 비밀’ 등 3권을 한꺼번에 펴내며 “최소한의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 일반인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역사서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을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은 후 약 1년 만의 완간이다.

저자의 필력으로 볼 때 대하소설로도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었겠으나 그는 단호하게 ‘다큐멘터리 소설’의 형식을 고집했다. 견고한 작가 정신과 사학자로서의 실증 작업이 함께 어우러지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대작이 아닐 수 없다.

4권은 부친 고종의 붕어(崩御)로 미뤄졌던 이은과 이방자의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1920년 4월 28일 일본식도 조선식도 아닌 서양식 예복을 입은 혼혈결혼식이 거행된다. 이들의 애매한 복장은 조선인들의 반발을 감안한 조치였다. 이 결혼을 계기로 완벽한 일본인 ‘이은’으로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당시 이은과 이방자의 결혼에 대한 언론과 민중의 반응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신문기사에서 이은을 가리켜 ‘적자(賊子)’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적자란 ‘임금이나 부모에게 반역하는 불충, 불효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왕조시대 언어 감각으로는 사람으로서는 차마 들을 수 없는 극심한 욕에 해당한다. 게다가 그를 가리켜 사람이 아닌 ‘금수(禽獸)’ 곧 ‘짐승’이라고 격렬하게 매도하고 있다. 이은을 더 아래로 떨어질 수 없는 가장 비천한 자리로 밀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은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감은 그의 첫 아들 이진에게까지 미친다. 윗사람을 찾아뵙는 근현식((覲見式) 형식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은 부부는 누군가의 독살로 아들 이진을 잃는 슬픔을 겪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조선 왕실에 일본인의 피가 섞이도록 놔둘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비극”이라고 분석한다. 나아가 이은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들을 소개하며 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고 있다.

한 예로 동경저(東京邸) 제2종묘 문제를 들 수 있다. 1938년 이은은 종묘에 모신 81위(位)의 위패를 베껴다가 동경 어전의 3층 방에 모셔놓고 한식과 추석에는 꼭 다례를 지냈다고 한다. 이를 ‘동경저에 제2종묘’를 마련한 것이라며 이은의 민족의식을 높이 평가하는 게 현재까지 일반 정서였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은 본질을 보지 못한 견해에 불과하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종묘에서 치르는 나라의 제사를 개인의 집에서 치르는 가문의 제사로 격을 떨어뜨리고 의미를 대폭 축소시킨 것”이라고 해석한다.

평생 일본제국의 군인으로 만족하며 살아왔던 이은. 집 안에서도 늘 군복을 입을 정도로 그는 제국의 충실한 군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일본의 패전과 제국의 멸망은 이은 자신의 몰락과 동의어였다. 저자는 “이제 이 긴 대하소설을 마무리하는 자리에 서서 주인공의 신분과 굴곡진 생애를 생각하니, 새삼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생각하게 된다”며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서의 탄식은 두렵게도 늘 진실이어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왕조시대의 군주제도가 드러냈던 폐해가 오늘날 우리의 눈에 결코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