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서봉수 9단 1500승 달성
입력 2012-04-25 18:36
조남철, 김인, 조훈현 등 일본 유학파가 득세하던 시절에 순수 국내파로 ‘된장 바둑’ ‘잡초 바둑’으로 불리며 바둑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봉수(59) 9단이 1500승 고지를 점령했다. 조훈현(1870승), 이창호(1588승)에 이은 3번째 기록으로 1970년 10월 1일 승단대회에서 고(故) 강철문 초단에게 첫 승리를 거둔 후 41년 7개월 만이다. 서 9단은 지난 20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7회 LG배 세계기왕전 통합예선전에서 2002년 중국신인왕전 우승자이자 중국랭킹 18위를 차지하고 있는 33세 아래의 펑첸 7단을 꺾고 2회전에서 정대상 9단을 꺾으며 영예의 기록을 달성했다.
70∼80년대 ‘조서시대’를 장식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봉수는 당시 엘리트로 불리었던 일본 유학파와는 대조적인 길을 걸었다. 그는 만 14세에 처음 바둑을 접한 후 16세 때 전국 고교생 바둑대회에서 우승하고 이듬해 17세의 나이로 프로가 됐다. 프로를 꿈꾸기 늦은 나이에 바둑에 입문하고 특별한 교육을 받지 못해 된장 바둑, 토종 바둑, 잡초 바둑으로 불렸지만 서봉수는 입단 3년차인 19세에 파죽의 11연승을 거두며 명인전 도전자가 됐다. 그리고 고 조남철 9단에게 3대 1로 승리를 거두며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 후로도 명인전 5연패를 차지해 지금까지 서봉수는 ‘서명인’으로 불린다. “나는 한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왔다. 그것도 피비린내 나는 최전방에서”라는 서명인의 고백처럼 그는 한평생을 바둑계에서 살아왔다. 1500승이라는 대기록과 서봉수에 관한 일화가 바둑계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조서시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조훈현 9단과의 대결은 현재 119승 247패로 아직까지도 둘의 대결은 초미의 관심사이다. 당시 유일하게 조훈현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자로 ‘라이벌’이라는 호칭이 붙었지만 만년 2인자의 자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기 바둑을 두며 수도 없이 지고, 흑을 쥐는 수모도 당했지만 바둑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결국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던 지독한 승부사였다. 응씨배 우승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반집승을 3번이나 연출하며 승리를 거두었던 진로배 9연승의 신화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앞뒤 꽉 막혀 융통성 없고 고집불통이라는 핀잔도 받지만 지금까지도 바둑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손자뻘의 후배들에게도 서슴없이 물어본다. 그리고 깨우침이 있으면 너털웃음 지으며 좋아하는 모습 속에서 한평생 행복한 전쟁터를 누비는 서봉수를 보게 된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