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조 시인 정소파옹… 현대화된 시조에 전념, 매일 2∼3편 쓰는 현역 젊은이들 가까이 했으면

입력 2012-04-24 19:33


2001년부터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이하 문학제)를 해마다 공동 주관해온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와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 측은 올해 문학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깜짝 놀랄 만한 일을 접했다. 시인 백석(1912∼95)과 동갑내기에 생전에 김영랑(1903∼50), 박용철(1904∼38)과도 가깝게 지낸 시조 시인 정소파(100)옹이 고향인 광주광역시 봉선동에 건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올 문학제의 대상 문인을 1912년생인 백석, 설정식, 김용호, 이호우, 정소파 등 5명으로 압축해 선정해놓고 생몰 연대를 확인하던 중 일어난 일이었다. 언론에 정옹의 존재가 소개된 것은 그가 ‘매천 황현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2006년이 마지막이었다.

한국작가회의 측은 문학제 행사요원들을 이달 초 광주로 급파(?)해 정옹과의 인터뷰를 동영상에 담았고 대화 가운데 일부 내용을 24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개했다. 정옹은 행사요원들의 방문을 받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문단사를 회고했다고 한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정옹은 보통학교 시절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나 광주지역 백일장을 모두 휩쓸다시피 하면서 전국 백일장 지역대표로 맹활약했다. 6학년 때(15세)에는 일제가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지 못하도록 하자 이에 반발, 20일간 동맹휴업을 이끌기도 했다. 17세 나이로 ‘개벽’에 시 ‘별건곤(別乾坤)’이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일제가 강제로 나라를 뺏어 ‘딴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일종의 ‘참여시’였다.

18세 때 일본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광주로 돌아와 ‘설창’ ‘호남공론’ 등 각종 잡지를 만들면서 ‘광주문단’에 주춧돌을 놓았다. 57년엔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설매사’가 당선된 이후 일본에 하이쿠가 있듯 우리 문학으로서 현대화된 시조를 써야겠다는 일념으로 지금도 거의 매일 시조 2∼3편을 쓸 정도로 근력을 과시하고 있다.

새벽에 작품을 구상해 아침식사 후에 정리한다는 그는 “집으로 우송되는 문학지와 시집은 모두 섭렵한다”며 “100세가 됐다는 것에 그다지 특이한 감회는 없으며 시작(詩作)을 하나의 종교로 생각해 죽을 때까지 창작을 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또 “젊은이들이 시조를 기피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가까이할 것”을 주문한 그의 동영상은 다음 달 4일 서울 연희창작촌에서 열리는 문학제의 부대행사인 ‘문학의 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이번 문학제는 대상 문인이 모두 시인이라는 점에 착안해 ‘언어의 보석, 어둠 속의 연금술사’를 대주제로 다음 달 3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다. 또 부대행사의 일환으로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학술대회’가 6월 30일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국내 유명화가들이 출품하는 ‘백석 시화전’이 10월쯤 서울 통인동 통인미술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