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꽃과 민족주의

입력 2012-04-24 18:04

꽃을 주제로 한 축제가 참 많다. 고양이나 안면도의 꽃박람회는 국제행사로 성장했고, 구례 산수유축제처럼 유서 깊은 행사도 있다. 이뿐 아니다. 동백, 목련, 복사꽃, 진달래, 자운영, 모란, 배꽃, 철쭉, 장미, 할미꽃, 도라지꽃, 연꽃, 상사화, 코스모스, 국화, 해바라기 등 꽃 이름을 건 행사가 전국에서 사철 열린다.

그제 막을 내린 여의도 봄꽃축제도 상춘객이 해마다 느는 것 같다. 밤낮, 평일주말, 남녀노소 구분 없이 소란 속에서 꽃을 감상했다. 이런 모습은 벚꽃축제의 원조격인 진해나 새로운 명소인 경주나 매한가지다. 무리지어 핀 꽃을 보고, 바람에 떨어지는 꽃비를 맞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정취를 즐긴다.

그러나 한동안 벚꽃은 기피의 대상이었다. 일본의 나라꽃 사쿠라의 이미지에다 우리의 무궁화를 탄압한 일제의 기억이 보태져 대놓고 좋아할 수 없었다. 무궁화를 오래 보면 눈이 붉어진다거나, 진딧물과 해충을 꼬드기는 꽃이라는 악담을 퍼뜨리면서 팔도의 좋은 무궁화나무를 뽑아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에 벚꽃의 자생지가 제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꽃의 민족주의에서 탈피한 것이다.

다만 지금은 민족주의에 바탕한 식물의 국적논쟁이 뜨겁다.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인기를 끄는 구상나무는 고향이 한국인데도 로열티를 받기는커녕 돈을 내고 들여온다. 우리나라 특산인 미선나무는 일본에서 흰개나리로 바뀌어 수입되고, 서남해안에 자라는 옥잠화는 미국으로 건너가 잉거비비추가 되어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다는 식이다.

천리포수목원장 민병갈의 일대기를 그린 신간 ‘나무야 미안해’에는 민 원장과 여비서 윤혜정 간의 대화가 나온다. “미스킴 라일락 알아?” “모르겠는데요.” “한국 자생종 수수꽃다리에 붙여진 영어 이름이지.” “왜 미스킴이 됐나요?” “씨앗을 채집해 간 미국인이 한국 여비서 이름을 붙인 거야. 나도 예쁜 식물 하나 발견하면 ‘미스 윤’이라고 이름 붙여주지!”

미스킴 라일락은 미국 식물학자 엘윈 미더 교수가 1947년 북한산 등반 도중 채집한 씨앗 12개를 가져가 세계적인 화훼상품으로 만든 사연이 있다. 이에 대해 민병갈은 “미스킴 라일락이 수수꽃다리라는 이름으로 백운대 꼭대기에서 찬바람만 맞고 있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이냐?”고 묻는다. 식물자원을 둘러싼 개방주의와 폐쇄주의의 갈등이 꽃을 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