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지구의 날에 가졌던 斷想
입력 2012-04-23 18:33
4월 22일, 지난 주일은 지구의 날 이었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생한 해상기름 유출사고를 계기로 1970년 4월 22일 미국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이 주창하고, 당시 하버드대학생이던 데니스 헤이즈가 발 벗고 나서 첫 행사를 연 것이 계기가 돼 이날 하루 인류의 어머니 되는 지구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를 느끼는 날이다. 모든 자식들은 다 청개구리과라 했던가. 육신의 부모에게나 대지의 어머니인 지구에게나 우리들은 참 할 말이 없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제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생존의 의제인줄 알면서도 머릿속의 깨달음이 손과 발의 실천으로 내려오는 데는 아직도 많은 세월이 더 필요한듯하다. 조그마한 불편도 참아내지 못하고 당장 빨리 편리한 문명의 이기적 수단에만 중독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참 한탄스럽다.
봄날의 한 때는 천금과 같다는데 지구의 아픔을 호소하듯 주룩주룩 내리는 봄비는 오랜만에 천지를 물들였던 울긋불긋 꽃 대궐을 금세 사라지게 할 것만 같았다. 지구의 날을 기념해서가 아니라 떨어지는 꽃잎들을 내 눈 속에 더 붙잡고 싶은 얄팍한 마음 한구석을 안으며 비오는 주일 오후, 서울 거리를 걸었다. 우울할 땐 꽃을 보라는 말을 가슴속에 되새기며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기위해 남산을 올랐다. 왠지 남산을 찾고 싶었다. 가까이 있어 오히려 멀어진 남산. 남산은 요즘 새로운 옷단장에 한창이었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봄비를 맞으며 화사하게 단장한 벚꽃들은 아쉽게 지고 있었고 연녹색 잎들이 어느덧 성큼 자라나 짙은 신록으로 물들이며 저마다의 가지들이 젊음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신록들마다 외치고 있었다. “어이할까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서정주의 시 ‘신록’ 중에서)
남산 위 전망대에는 많은 사람들, 우리 사는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 그리고 아름다운 젊은 연인들이 비오는 주말을 즐기려 몰려 있었다. 전망대 아래 철조망 사이사이에는 사람보다 많은 자물쇠들이 사랑의 언약을 다짐하듯 얽혀 있었다. 세월의 흔적만큼 다양하게 변색된 자물쇠통들을 바라보니 우리 삶의 만남과 이별의 변색들을 보는 듯했다.
남산을 내려오며 명동 한복판에 자리 잡은 명동성당 옆 가톨릭의 전진상 수도원을 들렸다. 이곳은 국제도시 서울의 노른자위 명동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그 한적함과 고즈넉함이 산속의 고찰과 같은 곳이다. 기도와 명상을 하기엔 더함 없이 좋은 곳이며 스스로를 돌아보기에도 한 없이 좋은, 시간이 멈춘 것과 같은 성스러운 곳이다.
얼마만인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 눈물의 감촉을 느껴본 시간이. 십자가상 앞에 앉아 나는 모든 만남들에 대해 고마움과 감사, 그리고 용서를 빌었다. 이 땅의 아름다움과 만남에 대해 감사함을, 그리고 내 탐욕스러운 삶의 아집과 잘못된 습관들에 상처입은 우리 땅의 아픈 생채기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빌며 기도했다.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케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인디언 수우족, ‘노란종달새의 기도문’중에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