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벚꽃의 배신
입력 2012-04-23 18:10
지난 주말 폭우를 동반한 강풍에 벚꽃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봄꽃축제도 막을 내렸다. 진해 군항제를 비롯해 여의도 벚꽃축제에 이르기까지 올 봄꽃축제는 예년에 비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벚꽃이 피지 않아 진해 군항제는 중반까지 썰렁했고 여의도에선 벚꽃이 피기도 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윤중로 통행을 막아 운전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기상청은 연초에 봄꽃의 개화시기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늦어진다고 예보했다. 굳이 기상청 예보가 아니더라도 여느 해보다 춥고 긴 겨울로 인한 봄꽃의 지각 개화는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봄꽃축제를 개최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일정 조정 없이 정해 놓은 스케줄대로 꽃이 피기도 전에 잔치판부터 벌여 비난을 자초했다.
봄꽃 개화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동성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여수 오동도 동백꽃이 장관을 이룰 무렵 광양 매화꽃이 피고 곧이어 구례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광양 청매실농원 장독대의 매화꽃이 낙화할 무렵 강 건너 하동 19번 국도의 벚꽃이 개화하는 것은 공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자연 공식도 무너졌다. 광양 매화꽃이 만개해도 여수 오동도 동백꽃은 감감무소식이고 어느 해는 광양 매화와 구례 산수유꽃이 같이 피기도 한다. 올해의 경우 매화는 보름, 벚꽃은 일주일 정도 개화가 늦어졌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봄꽃축제를 개최하는 지자체들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배짱축제를 계속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왜 개화시기에 맞춰 축제 일정을 조정하지 못할까. 원인은 봄꽃축제 프로그램의 경직성 때문이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가수 초청 공연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연 프로그램은 축제 개최 몇 달 전에 확정된다. 따라서 꽃이 늦게 피거나 빨리 핀다고 해서 축제를 연기하거나 앞당길 수 없는 구조이다.
그렇다면 꽃 없는 축제를 열 만큼 공연 프로그램이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을까. 대부분의 봄꽃 축제장을 가보면 정작 관광객들은 공연 프로그램에 별 관심이 없다. 여유롭게 걸으며 꽃을 감상하고 싶은 관광객들에게 대형스피커를 동원한 야외 공연은 짜증나는 소음에 불과하다. 축제장을 가득 메운 잡상인들도 꽃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지자체들은 축제와 직접 관련성도 없는 이런 프로그램에 주민들의 혈세를 투입하고 관광객에겐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만든다.
축제는 이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몫을 담당하는 산업으로 부상했다. 대한민국 대표축제인 진주 유등축제와 강진 청자축제 등 성공한 축제들은 기후 변화에 민감한 꽃을 주제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부 지자체들은 손쉬운 봄꽃축제에 매달려 스스로 가슴을 졸이고 거짓말쟁이를 자초한다.
꽃이 일찍 피든 늦게 피든 절정기에 즐기면 될 일이다. 지자체는 정확한 개화 현황 정보를 실시간 제공함으로써 관광객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진해처럼 가장 일찍 피는 벚나무를 향해 CCTV를 설치해 놓고 인터넷으로 홍보하는 것은 과장광고와 다름없다.
축제의 생명은 항상성이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늘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열려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2 문화관광축제’에 봄꽃을 주제로 한 축제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날씨에 민감하고 개화시기가 짧은 벚꽃은 축제의 주제와 소재로 적당하지 않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축제 모델을 개발해야 할 때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