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

입력 2012-04-23 18:10

양승태 대법원장이 종종 인용하는 ‘다모클레스의 칼(the Sword of Damocles)’의 유래는 이렇다. 기원전 4세기 시칠리아에 왕 디오니시오스를 부러워하면서 아첨하는 신하 다모클레스가 있었다. 그의 품성을 파악한 왕이 그에게 하루 동안 왕 노릇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술과 여인, 음악에 빠져 왕처럼 즐기던 중 자신의 머리 위에 날카로운 칼이 한 가닥 말총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창백해진 다모클레스는 권력자란 자리가 항상 위기와 불안 속에 유지되고 있으며, 언제나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줄행랑을 놓았다. 비록 잠깐이라도 신하에게 왕좌를 내주는 왕이 있을까, 그리고 왕이 허락했다고 선뜻 옥좌에 앉는 신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없지 않지만, 여하튼 그랬단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 2월에도 “법관에게 칼이 있다면 천장에서 우리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다모클레스의 칼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법관이라면 항상 중립성을 유지한 채 투철한 소명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는 양 대법원장의 소신이 읽힌다.

정치권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다. 정치인들을 두고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담장의 넓이가 얼마나 되겠나. 교도소에 갇힐 가능성이 큰 운명이라니 참으로 고약하다. 정치인은 권력과 부(富)를 함께 가지려 해선 안 되며, 권력을 부정한 곳에 사사로이 행사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실제 우리 역사는 권부(權府)에 있다고 욕심을 부리면 한순간에 영어(囹圄)의 몸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이 퇴임 후 철창신세를 졌고, 대통령 친·인척과 소위 실세(實勢)라는 사람들 중에도 감옥에 다녀온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권력을 쥐게 되면 까맣게 잊게 되는 모양이다. 복합유통단지 개발사업 인허가 문제에 개입해 거액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도 권력에 취해 역사의 교훈을 경시한 건 아닐까.

19대 국회의원 300명이 내달 30일 임기를 시작한다. 4년이란 임기를 무난히 마치길 바란다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쓰라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국민의 뜻과 다르게 사용해선 안 된다. ‘칼’을 맞거나 수의(囚衣)를 입게 될 수 있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