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말이 끊어진 경계에 피어난 시

입력 2012-04-23 18:10

萬物變遷無定態

一身閑適自隨時

年來漸省經營力

長對靑山不賦詩

철따라 만물은 쉬임 없이 변하고

한가한 이 몸은 절로 때를 따르네

이즈음 점차로 경영의 힘 줄어

늘 청산 마주하고 시 짓지 않네

회재(晦齋) 이언적(1491∼1553) 회재집 권2 ‘무위(無爲)’


조선의 도학 선비들은 성리학의 사유체계를 깊이 용해하여 독특한 시문학의 세계를 열었다. 바로 도학시(道學詩)다.

자연에는 하늘의 이치가 흐르고 있으므로 자연과 교감하여 즐거움을 얻고, 심성을 함양한다. 나아가 대자연의 화해와 공존을 인간사회에 구현한다. 이것이 도학 선비들의 자연관이요 세계관이다. 곧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여 자연을 닮아 사는 것이 궁극적 이상이다. 이들은 자기 수양의 과정에서 광풍제월(光風霽月), 곧 ‘맑은 바람에 씻긴 달’로 표현되는 정신 경계를 체험했다. 이 드높고 맑은 경지를 시로 담았다.

회재의 시에는 도학적 철리가 담겨 있다. 이 시는 그중에서도 탁월한 성취를 거둔 작품이다. 저 청산처럼 하늘의 이치와 혼연일체가 되어 사는 삶. 이것이야말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아닌가. ‘경영의 힘이 줄었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경지를 담은 표현이다. 인위를 버렸기에 경영의 힘이 줄고 자연과 절로 하나가 된 것이다.

청산은 철따라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존재이다. 동시에 만고의 세월을 가로지르며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존재이다. 변하지 않음과 변함, 이 양면적 속성을 한 몸에 지닌 청산은 그렇기에 ‘유행하는 만수(萬殊)’와 ‘항구한 일리(一理)’의 표상이 된다.

이 시는 존재가 모순이다. 시를 짓지 않는다 하였으니 애초에 창작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율곡이 설파했듯 언어가 있으면 경계가 있는 법. 자연과 혼연히 합일된 즐거움을 인간의 언어로 어찌 잡아낼까. 그래서 또 노래했다. ‘모든 꽃 다 지도록 시 한 줄 없음이여(謝盡千紅無一句) 뉘 알랴, 참 즐거움이 말없음에 있음을(誰知眞樂在無言)’

일체의 인위가 사라진 경계에 시는 무심하게 존재한다. 말이 끊어진 자리에 핀 무위의 꽃이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硏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