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보시라이 사건’ 일파만파] 계파간 막후 나눠먹기식 정치시스템 대수술 불가피

입력 2012-04-22 22:33


중국 정가의 막후 권력 암투가 여과 없이 시중에 흘러나오고 있다. 중국 대륙에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은밀한 내부 움직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계파 간 권력 투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국은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한 개혁 개방 20년여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지금 엄청난 정치 사회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중에서도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라는 병리 현상은 심각하다. 여기에 후진적 정치 시스템이 겹쳐져 보시라이 사건이라는 형태로 표출된 것이다.

◇톱 다운(top-down) 방식 정치 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 덩샤오핑 시절 공산당 정치국은 유명무실한 존재였다. 대부분 중요한 국가 대사는 덩샤오핑 사저에서 당 원로들에 의해 결정됐다. 그중에는 ‘8대 원로’로 불리는 보시라이의 아버지 보이보(薄一波)도 있었다. 1987년 후야오방(胡耀邦)을 총서기직에서 쫓아내는 결정도 이 모임에서 이뤄졌다.

덩샤오핑은 한 번도 당 최고직인 총서기 자리에 오른 적이 없지만 17년이나 실질적인 최고지도자로 군림했다. 그동안 후야오방 외에 화궈펑(華國鋒), 자오쯔양(趙紫陽) 등 총서기 3명을 갈아치우는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다. 덩샤오핑이 물러난 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아래서 당 공식 조직이 집단지도체제 형태로 기능을 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취약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후진타오 주석이 들어서면서 집단지도체제 성격은 더욱 강해졌지만 장쩌민 전 주석의 입김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9명 전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추진력을 얻지 못하는 상황도 적지 않았다. 보시라이 사건에서 보듯 계파 간 의견이 다른 때에는 심각한 정국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톱 다운 방식의 정치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중앙과 지방 사이의 관계 설정, 당 중앙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견제와 균형 안 되는 후진적 정치 시스템 수술 절실=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은 지난해 ‘중국특색사회주의’ 건설과 관련해 “법은 제대로 집행이 될 때 생명력을 가진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지난 16일 발행된 당 이론지 추스(求是)에 ‘권력은 햇볕 아래서 행사돼야 한다’는 기고문을 발표했다.

법 집행이나 권력 행사가 법과 제도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지금 중국에서 ‘법 따로, 사람 따로’ 현상은 심각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정치 시스템에 있어서 제도적인 견제와 균형 기능도 작동하지 않는다. 베이징 정가의 한 소식통은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비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 아래서 각 계파는 ‘나눠먹기’식 정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국 사회에는 ‘법에 의한 지배’와 ‘사람에 의한 지배’가 병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치’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룩한 측면도 있지만 서민들은 일상생활에서 ‘인치’를 매일 경험하며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중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고 사회적인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선 당과 정부가 법에 의한 지배를 정착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국원을 지방 주요 포스트에 배치하는 인사시스템 재검토= 보시라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국원을 지방 핵심 포스트에 배치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국원은 13억 인구 중에서 25명 안에 들어가는 대단한 파워를 가진 자리다.

이들로 하여금 베이징, 상하이, 톈진, 충칭 등의 최고위직을 맡기는 건 ‘지방 왕국’을 건설하도록 해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들 도시는 중국의 4대 직할시다.

천시퉁(陳希同, 전 베이징시 서기)과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 서기)가 당 중앙에 반기를 들다 실각한 것도 그들이 지역적인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천시퉁은 장쩌민 전 주석을 아래로 내려다봤고 천량위도 후진타오 주석을 최고지도자로 대하지 않았다. 보시라이 전까지 정치국원 신분으로 숙청된 사람은 이들 두 사람뿐이다.

톈진시 서기를 지낸 장리창(張立昌)의 경우 엄청난 부패 스캔들로 수많은 톈진 공무원들과 함께 쫓겨난 경우다. 그는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직을 떠나는 수순을 밟았고 1년 뒤 숨졌다. 그는 당시 암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숙청은 면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국원은 이미 국가 지도자 반열에 오른 인물들인데 이들이 주요 지방 서기를 담당하게 되면 해당 지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보시라이 사건은 이러한 인사 시스템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