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춘근] 아시아 浮上은 전략적 허구다

입력 2012-04-22 18:20


국제정치와 관련해 요즘 유행하는 말 중 하나가 ‘미국의 시대는 저물고 아시아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1950년대 이후 다수의 아시아 국가들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해 2010년대인 현재 아시아의 경제 규모는 유럽을 앞질렀고 미국의 지위마저 위협하는 상황이 됐다. 구체적으로 5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급속한 경제발전, 6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이른바 아시아 네 마리 호랑이의 눈부신 경제발전, 80년대 이후 중국의 초고속 경제성장, 2000년 이후 인도의 경제발전은 21세기를 ‘아시아의 세기’라고 부를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아시아가 부상하는 현상을 놓고 식자(識者)연 하는 사람들은 문명의 중심지가 이집트에서 로마로, 그리고 영국으로, 또다시 미국으로 옮겨갔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구 문명의 중심지는 항상 서쪽으로 이동해 왔으니 다음번 문명의 중심지는 당연히 미국의 서쪽에 있는 아시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륙 아닌 개별 국가의 성장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체계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하다. 문명의 중심이 동에서 서로 이동한다는 주장이 체계적이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경험적’으로는 맞는 일일지 모르지만 문명의 중심이 ‘왜’ ‘무슨 이유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이 같은 주장이 논리적이지 못한 이유는 미국과 아시아는 올바른 비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 나라이고 아시아는 여러 나라로 구성된 대륙이라는 점에서 같지 않다.

아시아가 부상(浮上)한다고 말하려면 아시아 국가들이 마치 한 나라처럼 행동한다는 가정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시아의 부상은 현실이 아니다. 아시아 국가인 일본이 부상했고 한국이 부상했고 중국이 부상했으며 인도가 부상한 것이 현실이다.

이들 아시아 국가의 부상은 협력보다는 오히려 상호 견제와 경쟁, 더 나아가 적대감마저 초래하고 있다. 일본의 부상을 중국은 즐거워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부상을 일본과 인도는 근심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중국은 인도의 부상을 기뻐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이 통일되어 보다 안정적이고 강한 나라가 되는 것도 내심 원치 않는다.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든 지난 13일의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이 있은 후 불과 일주일도 되기 전인 4월 19일, 인도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에 성공해 세계 여섯 번째 ICBM 보유국이 되었다. 인도가 발사한 아그니-5 미사일은 사거리가 5000㎞에 이른다.

그렇다면 인도는 왜, 누구를 목표로 ICBM을 개발한 것일까? 숙적 파키스탄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단거리 미사일로도 충분할 텐데 말이다. 미국을 견제하려면 1만㎞ 이상의 ICBM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인도의 미사일은 중국 견제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상호 견제·적대감마저 초래

미국의 전략가들은 아시아의 강대국들이 상호 라이벌이기 때문에 ‘아시아의 부상’이라는 개념은 전략적인 허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강대국 세 나라 가운데 최소한 한 나라와 동맹을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가 하나가 아니라서 가능한 전략이다.

일본은 2차대전 이후 현재까지 미국과 최상의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마음 걱정이 심한 인도도 미국과의 관계를 점차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키려 한다. 인도의 ICBM 발사 성공은 아시아의 부상이라는 개념이 전략적 허구임을 또다시 증명해 보였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