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혜지의 돌잔치
입력 2012-04-22 18:20
“어, 누구 생일이지?” 일이 있어 대낮에 집에 들른 한 남자 후배. 집에서 생일축하 노래가 흘러나오길래 순간 식구 생일을 잊었나 가슴이 철렁했다.
들어서니 집안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단다. 이웃집 강아지들과 그 주인들까지 불러 케이크, 육포, 망고 등으로 한 상 차려 놓고 개 돌잔치를 하고 있더라는 것. 주인공 혜지는 공단 색동 한복에 갖가지 장신구로 모양을 냈다고. 퇴근 후 훈계를 늘어놓으니 아내 왈, “요즘 유행이다. 별것 아닌 일로 까다롭게 굴지 말고 인생 즐겁게 살자”며 핀잔을 주더란다.
어디를 가든 견공 얘기가 무성하다. 특히 여성들 모임의 시작과 끝이 그 얘기다. 여성 3대 화제 중 연예인 가십, 남편 흉보기를 넘어서는 으뜸이다. 강아지 이름도 아이들의 돌림자를 써 작명하는 게 흔하다. 강아지가 식구의 한 사람으로 버젓이 등극한 것이다. 메리, 누렁이 등의 이름은 견공 모독이다.
개 카페나 개 묘지 등의 얘기는 구문이고, 스트레스 안 주고 대소변 훈련시키는 데 수백만원을 들이고 오래 같이 살자며 유기농 식단으로 식사 수발을 하는 집도 적지 않다. 신부전증을 알아내기 위해 36시간 입원시켰는데 80여만원을 냈단다. 일부 연예인이 기르는 강아지와 형제인 경우 몰티즈 새끼 한 마리에 500만원을 호가한다. 개 샴푸값은 사람 것의 두 배 이상이고 고가의 장난감, 영양제 등이 넘쳐나 한마디로 ‘개 팔자가 상팔자’인 시대다.
이젠 ‘애완견’이라 하면 개념 없다는 핀잔을 듣는다. ‘반려견’이라는 것이다. 부모와 사별할 땐 눈물 한 방울에 인색하면서 애견이 죽으면 온 식구가 대성통곡하는 걸 여러 차례 목격했다. 화장한 반려견의 뼈가루로 목걸이를 만들어 다니는 여성들도 있다. 개와 한 침대를 쓰는 집은 수없이 많다.
동물 이야기를 다루는 TV 프로를 보면 견공들의 눈물겨운 충성심과 대견함에 찬사가 절로 나온다. 주인이 돌연사한 줄 모르는 개가 주인 퇴근시간에 맞춰 10년간 기차역에서 기다리다 죽었다는 영화 ‘하치이야기’는 애견여성들의 화제였다. 그 모습을 보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애완동물 가구 천만 시대다.
근데 말이다. 뭐든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은 내 안의 이상신호가 작동하고 있다는 거다. 혹 내가 사람들과 사랑하고 사랑받는 데, 신뢰하고 신뢰받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관리대상으로 삼아온 게 아닌가.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얘기, 사람과의 사랑에 들어맞는 말이다.
지나친 관심은 집착이며 결핍과 구속의 다른 모습이다. 또한 자존감이나 자신감 결여에서 오는 행동과 무관하지 않다. “여러분, 돈이나 개는 관리와 돌봄의 대상이지,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에요. 돈이나 개보다 사람을 더 사랑합시다.” 최근 한 교회에서 들은 설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개 역시 좀 편하게 놔두라고 말할 것만 같다.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