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동물병원에서 배운 진리
입력 2012-04-22 18:29
내 생애 처음으로 동물병원에 간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에 전혀 취미가 없었지만 딸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딸이 사랑하는 햄스터가 문제가 생겼다. 가슴에 큰 혹이 생기고 비실비실해졌다. 내 마음 같으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 적당히 처리했겠지만, 딸아이는 노심초사하면서 날마다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가 동물병원에 다녀오라고 부탁할 때, 농담으로 여겼다. 작은 햄스터 한 마리를 들고 동물병원에 갈 생각을 꿈에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딸아이가 슬퍼하는 것을 날마다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난생 처음 햄스터 한 마리를 들고 동물병원을 찾았다. 늘 시간에 쫓기기에 은근히 짜증이 올라왔다. 동물병원 의사를 기다리자니 속에서 더 화가 치밀었다. 이윽고 의사를 만났다. 의사의 진단은 종양인데, 악성인지 아닌지를 검사하기 위해서 초음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웃음이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아니, 작은 쥐새끼 한 마리를 가지고 초음파를 한다고?’ 초음파 가격 또한 가관이다. 사람이 건강진단 받는 가격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나는 억지로 설득을 해서 그만두자고 했고, 진통제를 좀 달라고 했다. 약을 받아오는데, 약값이 1만5000원이다. 깜짝 놀랐다. 왜냐면, 내가 햄스터를 7000원을 주고 샀기 때문이다. 순간 ‘이 약값 대신 햄스터 두 마리를 살 수 있었겠구나!’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돌려 약을 들고 만족해하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내 생각이 틀렸다.
동물병원을 나오면서 한 가지 깨달았다. 이 햄스터의 가치는 적어도 이제부터는 7000원은 아니라는 것을! 만약 그날 내가 5만원을 투자해서 초음파를 했다면, 햄스터의 가치는 적어도 5만원 이상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가치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주인이 투자한 만큼 인간의 가치는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존귀해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아서 존귀해진다고!’ 무슨 말인가? 헝겊 인형이 없으면 잠을 안자는 아기가 있었다. 헝겊 인형은 아무 가치가 없지만, 그 아이는 하찮은 헝겊 인형이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한다. 이 헝겊 인형은 그 집안의 보물 1호였다. 주인의 사랑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물질적 가치가 비싸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 아니라, 주인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에 걸맞은 가치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당연하다.
우리의 주인께서 우리에게 투자한 가치가 과연 얼마이었던가? 그 아들의 생명을 투자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의 가치는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만큼 가치가 있다. 주일 예배시간에 복음과 우리의 존귀함을 설교했다. 코 끝이 찡했다. 햄스터가 가르쳐준 진리였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