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봄날에 풀어쓴 ‘이별’ 백과사전… 김서령 소설집 ‘어디로 갈까요’

입력 2012-04-20 18:03


꽃피는 4월에 이별이야기라니, 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집이 김서령(38·사진)의 ‘어디로 갈까요’(현대문학)이다. 이별을 주제로 한 9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첫 머리에 실린 ‘이별의 과정’은 소설집 전체의 표지판 같은 작품이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겪는 거의 모든 이별이 망라돼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시인 지망생이던 아빠가 M시의 운송회사에 다닐 때 잠시 만났던 ‘그녀’와의 이별이 있다. 그녀는 ‘나’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는데 곧 ‘나’와도 이별한다. 음대도 졸업하지 못한 그녀가 운영하는 ‘체르니 피아노교실’은 시대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핵심적인 이별은 ‘나’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사귀던 K와의 사이에서 일어난다.

‘나’는 이십대의 대부분을 K와 보냈기에 “공유하지 못하는 기억이 없다”는 이유로 이별을 선언한다. ‘나’의 이별은 역시 고교 2학년 때부터 연애를 시작해 결혼으로 이어진 아빠와 엄마의 이별과도 맞물린다. 위암에 걸린 아빠가 엄마와 이별할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은 자연적인 이별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일종의 잠언이기도 하다. “나의 아빠도 피아노 선생님과 젊은 날 이별을 했고 또 나이가 들어 영영 그녀를 더 먼 곳으로 보냈다. 나의 엄마는 내가 알 도리 없지만 어떤 식인가의 이별을 겪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속으로 묵혀야 하는 쓸쓸함이 있고, 밖으로 까발려야 하는 우울이 있는 법이다. 무얼 묵히고 무얼 까발릴 것인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33쪽)

표제작의 등장인물 박민영 역시 남편의 죽음이라는 이별의 방식에 직면해 있다. 대기업에 사표를 내고 뒤늦게 의대에 입학해 피부클리닉을 차렸던 남편이 빚만 잔뜩 남기고 자살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죽음 이전에도 이미 심리적으로 이별을 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를 가져볼까:라는 그녀의 말에 남편은 “다 같이 죽자는 말이구나”라며 싸늘하게 빈정거리곤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들 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는 ‘나’의 고백은 그녀가 이미 심리적으로 현실의 여러 대상들과 결별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소설집은 우리의 삶 자체가 이별의 연속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보여준다. 김서령은 “어떤 이별의 모습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은 없다. 단지 이별을 대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볼 뿐이다”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