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펄에 비친 체험의 인간학… 곽재구 시집 ‘와온 바다’
입력 2012-04-20 18:03
곽재구(58) 시인의 신작 시집 ‘와온 바다’(창비)는 이전 시집인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1999)와 무려 13년이라는 세월의 상거(相巨)를 지닌다. 그 사이에 간간히 동화나 에세이 등을 펴내긴 했지만 그가 오랫동안 침묵을 지킨 이유는 2001년부터 순천대에서 시를 가르쳐왔기에 시심을 발동시킬 변압기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강단에 서는 시간만큼 시의 결핍에 목말라한 그를 위로해 준 것은 ‘와온(臥溫)’ 포구이다.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 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달은 이곳에 와/ 첫 치마폭을 푼다/ 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 등이 하얀 거북 두 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 리어카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 인간은/ 해와 달이 빚은 알이다”(‘와온 바다’ 부분)
와온은 전남 순천만에 있는 갯마을 이름이고 마을 앞에는 드넓은 개펄이 드러나는 바다가 있다. 시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와온을 찾아가 개펄에서 허리를 굽힌 채 꼬막을 줍는 갯마을 사람들의 노동에 자신의 내면을 겹쳐놓는다. ‘등이 하얀 거북 두 마리’란 꼬막을 리어카에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 주민들을 상징하지만 그들의 귀갓길을 비추는 저녁놀을 배경으로 보면 해와 달이 빚어놓은 알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구차한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되는 우주의 운행질서는 삶의 결핍을 위로해 주는 또 다른 인간학이 되고 있다.
“어릴 적엔 햇살이 나무들의 밥인 줄 알았다/ 수저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천천히 맞이하는 나무들의 식사시간이 부러웠다/ 엄마가 어디 가셨니?/ 엄마가 어디 가셨니?/ 별이 초롱초롱한 밤이면/ 그중의 한 나무가/ 배고픈 내게 물었다”(‘무화과’ 부분)
유년 시절의 체험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시는 참으로 오래 묵혀두었기에 저절로 발효의 힘을 자아낸다. 그는 부모와 함께 화목하게 사는 유년기를 보내지 못했고 한동안 꼴머슴살이를 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삶의 진실에 밀착한 이 같은 아름다운 시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이다. 6·25 때 인민군도 다녀오고, 국군에도 다녀온, 특이한 이력이 있는 허상갑씨 이야기도 오래 묵힌 묵은지처럼 감칠맛을 자아낸다.
“전쟁 다 끝나고/ 허상갑씨 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댁에서 한상 걸게 차려냈는데/ 잘 구운 법성 굴비 한 마리를/ 꼬리부터 뼈 하나 남김없이 다 먹은 뒤에/소 몰고 곧장 들로 나갔지요// 자운영꽃 수북하게 핀/ 논을 갈아엎으며/ 이러이러 땅 보니까 힘 난다/ 전쟁놀음 같은 건 한순간에 잊었지요”(‘약천리 허상갑씨가 굴비 식사를 하고 난 뒤’ 부분)
와온이 ‘안의 안식처’라면 시인이 2009년 7월부터 1년 반 동안 머물렀던 인도의 한적한 시골마을 산티니케탄은 ‘밖의 안식처’로 다가온다. 문학청년 시절 타고르에 심취했던 시인은 마침내 그 땅의 서정으로 섞여들며 타고르에게 말을 건다.
“라빈드라나트,/ 지금은 해가 졌다오/ 무거운 발걸음 끌며/ 불가촉천민의 마을을 지나는데/ 눈매 서늘한 한 아낙이/ 댓잎에 싼 탈리를 주고 가네/ (중략)/ 아직 돌아오지 않는 소년의 이름을 부르노라/ 엄마의 목소리는 챔파나무 숲을 크게 흔드는데/ 그대여, 길 걸으며 시를 쓰는 일 점점 외로워지는데/ 그대여, 길 걸으며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는 일 점점 쓸쓸해지는데”(‘라빈드라나트 타고르를 생각하며 2’ 부분) ‘와온’이며 ‘산티니케탄’은 시인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식처이며 휴식처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